記者의 자존심

이 영 란 정치행정팀장

시민일보

| 2003-06-04 18:59:09

{ILINK:1}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해도‘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기자들도 자기가 출입하는 쪽에 대해 대체로 애정을 갖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같은 신문사 소속이라도 출입처에 따라 조금씩 시각이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특정 사안을 놓고 한나라당 출입 기자와 민주당 출입 기자의 시각은 상반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인가.
출입처 입장을 이해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출입처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기사가 흐르다보면 편견에 가까운 기사가 작성되기도 한다.

그런데 아무리 팔을 안으로 굽혀 보려고 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있다.

제 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애를 써도 좋은 구석이 발견되지 않을 때다.

기초상식에 가까운 사안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소위 지도층 인사라며 거들먹거리는 현장에서만큼은 아무리 출입처라 해도 팔을 굽힐 수 있는 인지상정이 발휘되지 않는다.

사실 기자는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직업인이다.

그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기자는 겉으로 볼 때에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3D 직종가운데 하나다.

끼니를 제 때에 챙겨먹으려면, 잠을 제대로 ‘푹’자려면, 출퇴근을 제 시간에 맞춰하려면,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기를 원한다면 기자의 길을 선택해서는 결코 안된다.

또 기자의 정상적인 일과는 주로 퇴근 이후에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매일 술이요, 12시 ‘땡’해야만 비로소 집에 들어갈 수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전체 직업군 가운데 가장 단명하는 직업이 바로 ‘언론인’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홍보성 기사만 쓰는 기자라면 그럴 필요도 없다.

제 때에 대접받아가면서 끼니를 찾아 먹을 수 있고, 밤늦게까지 뉴스원을 따라 다니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또 ‘고맙다’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들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것은 홍보맨이지 기자가 아니다.

때로는 비판기사도 써야 하는 게 기자다. 기자가 그런 기사를 쓴다고 해서 월급을 더 많이 받는 것도 아니다. 기껏해야 국장이나 데스크로부터 받는 칭찬이 전부다.

그러나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기사 작성 전은 물론이고 신문보도 이후 항의 전화로 시달리기 일쑤다.

그러나 그로 인해 주눅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기백배(勇氣百倍)해지는 게 기자다.

출입처에서 ‘통탄할만큼 기가 질리게 만드는 무지’를 만났을 때, 그것을 올바로 교정해내지 못할 경우 기자는 허탈해진다.

그러나 파란 것을 붉다 할 수는 없다고 버틸 수 있는 힘이야말로 기자를 지탱시키는 힘의 원천이다.

그리고 그것을 양질의 가치로 자위하는 것이 기자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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