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낯선땅 부하라서 보낸 생일

시민일보

| 2003-06-08 19:33:49

어린아이들이 헬로우하며 따라오는 똘망똘망한 녀석들 때문인지, 아니면 7달러로 2층집을 전세내어 쓰는 기분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서울로 돌아가면 나를 잔뜩 기다리고 있는 스트레스를 만나기 싫어함인지 부하라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아무리 양치질을 해도 이놈의 양고기와 양파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내 러시아 발음이 형편없어 그런지 밥을 먹고 싶다는 리스라는 발음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카페 종업원의 말에 그 대신 식사를 하는 것은 영락없이 우즈벡 전통 빵인 논과 양파에 함께 양고기 샤슬릭을 질리도록 먹어대고 있다.

앞으로도 한 달간 더 먹을 수 있어 눈물겹도록 즐겁기만 하다.

고장난 시계는 알마타에서 잃어버렸고 웬만한 호텔에서는 당연히 시계가 걸려있지 않으니 내가 매일매일 메모를 기록하지 않았다면 시간가는 줄 느끼지 못할 만큼 지금 나는 황홀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잠시후면 내 생일인데 혼자 보내기가 서운하다.

머나먼 우즈벡키스탄의 부하라에서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었다.

부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새로 지은 부하라 호텔 지하의 나이트 클럽에서 쓸쓸하고도 외로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약 한달전에 카자흐스탄 공화국의 아크타우 호텔에서 만났던 엔지니어 전문가인 로만이라는 러시안이었다.

190cm나 되는 거대한 체구에 머리는 율브리너처럼 면도날로 밀어버려 반들반들 빛이나는 로만은 어두컴컴한 나이트 클럽에서 기가 막히게 나를 알아보고 다가온 것이었다.

아크타우와 부하라에서 만난 것은 보통 우연의 일이 아니라며 같이 온 동료들과 자리를 함께 하자며 서울에서 온 여행가라고 소개를 하자마자 연거푸 보드카가 날라 들어오는데 환장할 노릇이었다.

오늘 새벽이 내 생일이라고 하자 코가 삐뚤어지게 마신 이들은 동행한 일행 중 홍일점인 러시안 아가씨와 함께 황홀한 밤을 보내라며 어깨를 밀어붙이는데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가씨와 밤을 같이 보내다가는 뒤치다꺼리하기 바쁠 것 같았다.

디스크 자키에게 다가간 로만이 생일축하 노래를 부탁하자 해피버스 투데이와 함께 신나는 음악이 나이트 클럽을 때리고 춤을 추던 모든 사람들이 건배를 하는데 졸지에 한국의 여행자가 여기서 스타가 되었다.

딱 한군데 밖에 없는 부하라의 나이트 클럽은 구 시가지에서는 보기 힘든 러시안들이 대부분을 차지하였고 선이 보일 정도의 쫄바지와 미니스커트를 입고서 나이트 문화에 병을 앓고 있는 우즈벡 아가씨들이 다 모여 천부적으로 물려받은 몸매에 막춤을 추는데 입장료가 100숨에 불과해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여기 온 것을 후회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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