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떠보니 딴세상

역전에 산다

시민일보

| 2003-06-11 18:09:32

돈·명예·사랑을 모두 갖게 된 기막힌 역전 스토리가 있다.

어릴 적 필드의 신동으로 꼽히던 강승완(김승우)은 우승컵을 거머쥔 순간 어머니가 병사한 사실에 충격을 받아 골프 클럽을 놓고 증권사 영업사원으로 평범한 인생을 엮어나가고 있다.

그는 조직폭력배 마강성(이문식)이 맡긴 돈을 한 회사에 몽땅 투자했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터널을 질주하다가 맞은편 스포츠카에서 똑같이 생긴 사람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벽을 들이받는다.

정신을 차린 승완의 눈앞에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조폭에게 쫓기던 증권사 영업사원이 골프 챔피언으로 바뀐 것이다. 거리의 사람들은 사인해달라고 성화이고 건물 벽 광고판에는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다. 거기에다 매력적인 아내(하지원)까지.

그러나 문제는 세계 챔피언 빌 잭슨과의 대결이 눈앞에 닥쳐 있는 것.

뒤바뀐 인생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승완은 정체가 들통나지 않기 위해 밤새도록 골프 연습에 매달린다. 꼭 닮은 사람과 인생이 뒤바뀐다는 이야기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에서도 단골 소재로 쓰였다.

각본을 쓰고 메가폰까지 잡은 신예 박용운 감독은 자칫 상투적으로 비칠 수 있는 얼개에다 주인공과 뒤바뀐 대상의 인생을 뫼비우스 띠처럼 엮어놓는 변주를 시도했다.

두 사람이 다른 사람인지 같은 사람인지 끝까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


여기에 조연마저 겹치기로 출연시켜 재미를 더한다.

조폭 마강성 역의 이문식은 의사로 등장하고 증권사 상사 박광정과 친구 애인인 고호경은 각각 택시 운전기사와 여배우로 둔갑한다.

승완의 아내 하지원도 왕년의 골프 신동을 인터뷰하기 위해 스토커처럼 매달리던 여기자였다.

‘라이터를 켜라’에서 어리보기 예비군 역할을 능청스럽게 해낸 김승우는 여기서도 특유의 어리둥절해 하는 표정으로 폭소탄을 던진다. 차승원의 이미지 변신이 이제는 새삼스런 일이 아니듯이 김승우도 이제 ‘코믹 스타’라는 별칭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이야기의 짜임새는 성긴 편이다. 인생이 뒤바뀌는 과정을 ‘호접몽’처럼 팬터지로 처리하다보니 내러티브에 비약이 많고 캐릭터에도 과장이 심하다.

후반부에 감정의 과잉이 발견되는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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