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한국어에 푹 빠진 ‘21살 청년’
시민일보
| 2003-07-19 17:48:58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심지어는 사랑을 하면서도 오로지 머리에는 한국말만 생각하고 말하고 한국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했다.
그 결과 어느 정도 한국말이 통하자 다시 한국대사관에 가서 한국에 가서 일하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부탁해 부산에서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한국말을 통달해 버렸다는 것이다.
이젠 고향인 안디잔에 돌아와 통역요원으로 일을 하며 여건이 허락이 되면 한국의 대학에서 한국에 관계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세르조드의 한국명은 박인호였다. 나이는 21세 담배와 술은 전혀 못하고 사랑하는 애인도 한국에 관심이 있는 여성이라면 좋겠다는 박인호는 완전히 한국에 빠져있었다.
호텔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 그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자정이 넘어 새벽에 접어들자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뭇잎에 부딪치는 빗방울의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오는데 점점 가을이 내 주변에 가까이 와있었다.
치르칙크11, 타슈겐트10, 사마라칸트14, 부하라20, 카르쉬18, 테르메즈19, 페르가나 지역15 이 번호들은 우즈벡키스탄의 자동차 번호이다. 자동차의 숫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우즈벡키스탄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항시 누군가의 감시를 받는 것 같았는데 우즈벡키스탄을 벗어나니 날개를 달아 놓은듯 마음이 가볍다.
언제 어느 때 어떤놈이 시비를 걸지 몰라 항시 여권 속에 고이고이 간직하고 다녔던 거주지 등록 서류를 정리하니 여권이 홀쭉해져 버렸다. 엎어지면 코 닿을 키르키스탄의 오쉬로 넘어오면서 도슬릭 양쪽의 국경을 지키는 군인들의 얼굴표정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벌어져 있었다.
여기서도 센츄럴 아시아에서 우즈벡키스탄은 점점 고립되어 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즈벡쪽의 도슬릭 국경선에는 4개의 검문소에서 일일이 확인을 한 후에나 들여보냈고 심지어는 같은 CIS 여권을 가진 사람들조차 문제될 것 없는 문제가지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돈을 뜯어낸다거나 아니면 돌아가라는 막가파식이었던 반면에 키르키쪽의 도슬릭은 있으나 마나한 단 한군데의 초소에서 여권도 보여달라는 말도 없었다.
잘 가라는 말과 군인이 하는 일이라고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입국 스탬프를 찍어 달라고 내가 다가가자 그제야 여권을 보고는 노트에다 볼펜 한번 쫙 긋고는 끝이었다.
키르키스탄을 2번째 입국하지만 내 비자에는 전혀 키르키스탄을 방문한 흔적이 없는 것이다. 열심히 찍어놓은 사진이 없으면 거짓말하고 다니는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여행전문가 kapabah@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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