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자금과 정치개혁
정 병 운 서울시선관위 홍보과장
시민일보
| 2003-07-26 17:06:24
최근 며칠사이 쉼없이 언론의 지면을 장식하는 정치자금 관련 보도들을 접하면서 역시 정치자금 문제는 민주주의제도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동양적 사고에서 볼 때 ‘돈’문제를 꺼내면 왠지 떳떳해 보이지 못하고, 뭔가 어두운 면을 생각하게 하는 우리네 전통적·윤리적 사고가 나름대로 근거가 있음을 새삼 알게 된다.
또한, 정치자금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각이 서양이라 하여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것은 수년전 필자가 영국 보수당을 방문하여 관계자를 인터뷰했을 때나, 멕시코의 제도혁명당(PRI당) 간부를 만나 정치자금에 관한 인터뷰를 했을 때에도, 모두 그들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No comment’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의 생각에 정치자금의 조달과 지출문제에 있어서만은 평당원이나 일반 간부가 접하기에는 그리 일반화된 업무가 아닌 듯 싶으며 일부 핵심간부에 국한되는 영역으로 추론된다.
그러나, 정치자금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현대정당을 움직이는 3요소로 이념, 조직과 함께 자금을 들고 있는 것만 보아도 정치자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아니하다 할 것이다.
일본 소화시대 초기작가 오자키 유키오는 “우리나라의 정당지도자는 5가지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첫번째부터 네번째 까지의 자질은 돈이며, 다섯번째가 정치적 자질이다.”라고 갈파한 경우나, 미국 공화당 정치가 마크 한나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가 돈이고, 두 번째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라는 말속에서도 정치자금의 중요성을 쉽게 읽을 수 있다.
사실,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 그리고 정당의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에는 자금의 사용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모든 국가가 민주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는 비용이 든다는 점을 인정하고 ‘민주주의의 비용’ 조달을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정치자금의 지출은 공직을 돈으로 사는 결과를 낳고, 정경유착의 고질병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난제중의 난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간 정치자금과 관련된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자금 제도의 개혁을 소리높이 외쳐왔지만 그 결과는 용두사미였던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며칠 전 중앙선관위가 정치개혁안을 발표한 사실이다. 그간 몇 번의 정치개혁안이 발표되고, 그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나 입법과정에서의 결실은 그리 크지 않았던 것으로 사료된다.
이번에도 선거운동의 자유보장, 당내민주화 촉진, 정치자금 투명화 제고를 주 내용으로 하는 정치개혁안이 제시되었으니, 정치권은 이렇게 좋은 호기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정치자금에 관한 개혁안은 너무도 당연한 제안이어서 입법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정치개혁!
정치자금제도의 개혁으로부터 그 단초를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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