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봉’인가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08-09 17:01:51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다.
이는 지난 7월 청계천 복원공사가 착공된 이후 서울지역 공무원들이 겪는 심적 갈등과 딱 맞아떨어지는 표현이다.
당초 청계천 복원사업은 착공 이전부터 이래저래 예상되는 문제점으로 공사연기를 요구하는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 중 교통대란에 대한 우려는 가장 크게 부각된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공사 착공 한 달이 넘은 지금 도심교통은 이전보다 훨씬 더 원활한 흐름을 보여 그간의 우려를 한낱 기우로 만드는가 싶었다. 세간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낸 서울시의 교통정책에 대해 이낌없는 성원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니 ‘정책’덕분이라기보다 자치구 공무원들을 ‘봉’으로 전락시킨 전시행정 효과였다.
애꿎은 공무원 등(?)만 터뜨린 결과였다.
이같은 사실은 최근 공무원들의 불만이 표면으로 표출되면서 드러나게 됐다.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에 있어 도심 교통난이 시민불만사항으로 불거질까봐 각 자치구 공무원들만 들볶고 있다는 불만이 그동안 내부에서만 돌고있더니 급기야 ‘소리’가 되어 반발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달 말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승용차 자율참여제만 해도 그렇다. 말이 ‘자율’이지 이건 숫제 ‘의무’나 ‘강요’가 더 어울린다. 더구나 서울시가 자치구간 무한경쟁을 부추키기 위해 내건 총 20억의 교부금 때문에 서울시 전 산하 모든 조직은 지금 전쟁판이다.
행정 일선마다 자율제 추진에 전 행정력을 동원하다시피 과도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양상도 아무리 곱게 보려해도 이해가 안된다. 심지어 자율제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차량에 대해 주차장 출입자체를 원천봉쇄하는 자치구도 있다.
한 자치구 공무원은 “개인당 10건씩 할당된 자율제 신청서 때문에 본연의 업무 대신 하루종일 전화기에 매달려 지인들에게 자율제 실적을 채워달라고 애걸하는 팔자에 없는 짓을 했다”며 “과도한 실적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물론 일손이 모자라 대민 서비스 질이 저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위의 공무원 친구들이 많아 그들이 자율제 가입을 위해 애쓰는 현황을 지켜봤다는 시민 서명석(은평구 대조동)씨도 “서울시가 교통대책이라는 본질보다는 실적 위주의 성과내기에 급급한 모습이 역력하다”며 “이런 식이라면 청계천 복원사업에 대해서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꼬집었다.
이명박 시장은 이같은 여론을 바탕으로 지금이라도 자신의 공약사업 성취를 위해 공무원 조직의 희생을 강요하는 방법을 택한 지금까지의 노선을 재점검해야 한다.
시정운영의 버팀목은 특유의 추진력도 아니고 공무원을 독려해 올린 실적도 아니다. 단지 투명하게 형성된 시민과의 공감대다.
종종 더 큰 화근을 불러왔던 ‘잔머리의 역사’는 백번이고 귀감 삼을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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