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8-09 17:57:56
(6) ‘낮에 뜬 별’들의 행진
“제주도에 그런 동굴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 말고 아무도 없을 걸요. 억만금을 준대도 팔고사고 할 수 없는 황금동굴인 셈이지요.
컬럼브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과 비긴다고나 할까요? 나는 그 무렵부터 제주인이 되기로 마음을 굳혔어요. 그래서 그 동굴은 영원한 나의 소유물이라는 뜻도 되지요”
눈알을 부라리며 서병천은 소유권을 주장했다.
황금동굴? 도대체 어떤 동굴이기에…? 마치 꿈속에서 노다지를 캐고 하루아침에 백만장자가 된 미치광이의 모습과도 같다. 얄밉다기 보다 가엽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다.
황금동굴-지하도시 그리고 서 중위의 소유물…? 아직은 서 중위의 가슴속 깊은 곳에 감춰진 진실의 모습을 들여다보기엔 이른 시점이다. 그러면서도 그가 제주인이 되겠다는 말은 그냥 해 본 소리겠지? 하고 이만성은 묵살하고 싶었다. 천지가 개벽된 이래 줄곧 땅밑에 감춰졌던 거대한 동굴, 그것이 외지인인 서 중위에 의해 백일아래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
이만성이 약간의 저항은 느끼면서도 서 중위의 주장을 호의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남다른 도량 때문이었다.
“어쩌면 문제의 동굴 그곳은 뱀들의 천국이 아닐까요? 거듭거듭 확인을 해 봐야겠지요?”
이만성이 농담조로 너스레를 놓았다.
“글쎄요. 몇 번 더 둘러볼 생각입니다. 동굴안에 뱀은 없었지만, 그러나 죽은 이무기의 영혼을 나는 그 속에 모시기로 했어요. 전쟁이 끝나면 나는 이형과 굳게 손을 잡고, 제주땅에서 큰일 한번 해볼까해요. 협조해 주시겠지요? 젊은이들 중에서 첫 손 꼽는 항일투사께서…”
서 중위도 농담섞인 목소리로, 그러나 진실이 담긴 표현으로 당부를 하는 것이었다.
“물론이지요. 협조해드리고 말고요. 서 중위님이 끌어주시기만 한다면 어딘들 못 따라가겠습니까? 힘닿는 데까지 협조해 드릴 겁니다. 염려 놓으세요!”
“고맙군요. 믿기로 하겠어요”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로부터 3개월 후 전쟁은 끝났는데, 군복을 벗었을 서병천의 행방은 묘연해지고 말았다. 백주의 잠꼬대였겠지? 이만성은 잊고 체념하고 잇었는데, 소리소문없이 불쑥 나타났으니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서형의 소유물인 문제의 황금동굴은 언제까지 극비에 붙일 작정이신지…?”
이만성은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물었다.
“초조해하실 것 없어요. 이형께 보여드리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니까. 그 보다도 오늘은 선생님과 긴히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네요”
서병천은 술이 센 편인 듯 거나하게 취한 것 같았으나, 자세는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은 얘기 주저말고 해보게! 서로 믿는 사이니까 격의 없이 모든 거 다 털어놓도록!”
이양국도 얼굴이 불그레하니 취해있었지만 혀꼬부라진 말투는 아니었다.
“말씀드릴게요. 제주도엔 말입니다. 고래로 ‘명당(明堂) 선호사상이 팽배해 왔던게 아닌가고 느껴지거든요. 농사짓는 경작지 한 복판에다 분묘들이 자리잡고 있는 걸보면 말입니다.
마치 조선 땅 아닌 머나먼 이국땅에 왔다는 착각을 느낄 정도라구요. 왜 그럴까요?”
“음, 명당선호사상! 좋은 지적일세, 제주도 특유의 진풍경인 셈이지, 아무리 흉년이 들고 끼니를 굶는 한이 있어도, 조상 모시는 일 만큼은 절대로 소홀함이 없다니까, 그리고 경작지라고 해도 제주도는 전부 산악지대인 셈이야. 육지부에도 산기슭에 많은 분묘가 산재해 있잖은가? 제주의 독특한 조상숭배사상의 상징이라구”
이양국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히죽 웃었다. 서병천은 숙연해진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지금부터입니다”
서병천은 서먹거리는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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