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무관심속 ‘사라져가는 모스크’
시민일보
| 2003-08-12 17:49:35
30통이나 되는 필름을 사진 현상소로 들고 가니 여직원 아가씨가 입을 남산만하게 웃으며 반겼다.
저녁시간대라면 몇시가 되더라도 인화를 해 놓겠다면서 말이다.
36장 1통에 25위안 160원으로 환산해도 4000원이 넘지 않았지만 사진 또한 서울에서 인화하는 것 못지 않게 질이 좋았다.
센츄럴 아시아에서는 보통 36장 1통을 인화하려면 1만4000원 정도가 필요하니 사진 인화비가 서울보다 훨씬 비쌌다.
30통에 36장씩 계산을 해도 1000장에 가까웠고 인화비만 600위안 정도 들었으니 이 현상소에서는 얼떨결에 손님 한 명에게 웬만한 사람 한달 월급을 사진값으로 챙기게 된 것이었다.
조그마한 배낭 한 개가 더 필요하게 된 것을 옆침대에서 바라보는 에르한은 나보러 미쳤다고 했지만 그래도 나는 좋았다.
어차피 미치지 않고서는 실크로드 여행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내일은 하루종일 인화한 사진 정리하는데 꼬빡 투자해야겠다.
우루무치에서 내가 제일 즐겨 찾는 장소 가운데 한곳이 소수민족 상품을 팔고있는 위그루 시장으로 모든 종류의 위그루 상품들을 구경할 수 있는 참으로 재미있는 곳이다.
그런데 두달전까지만 해도 여기저기 구경하는 맛이 있었던 이곳이 이젠 새롭게 지어놓은 건물로 모두 들어가 있었다.
냄새나는 좁은 골목안을 이곳저곳 기우뚱거리며 돌아보던 그 시장은 이젠 깡그리 없어져 버리고 대신 엉성하기 짝이 없는 건물 안으로 상인들을 몰아 넣어 버렸다.
또한 옆에 자리잡은 먼지가 잔뜩 쌓여있던 모스크마저 새로운 빌딩을 짓느라 여기저기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강력한 중앙정부를 지향하는 중국의 공산당과 위그루인들의 나약함이 어우러져 세계의 유산인 모스크가 하나둘씩 무관심 속에 사라지고 있던 것이다.
모스크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은 위그루인들의 독립도 함께 무너지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신강지역의 한족화가 되어 가는 현상으로 인해 내 마음도 멀어지지 않을까 조바심이 난다.
어제 뽑아놓은 사진을 차곡차곡 정리하면서 서울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에 다시 센츄럴 아시아로 발길을 돌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니 이러다가 그나마 조금밖에 물들지 않은 여행병이 완전히 도지게 되면 지금도 가진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데 세상 살아가는데 쪽박 차는 신세가 되는 것이 아닌지 겁난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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