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개정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08-12 17:56:06
중앙선관위가 최근 마련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에서 선거일전 180일부터 `예비후보자’의 사전선거운동을 허용하면서 지방자치단체장의 공직사퇴시한을 현행 180일에서 120일로 줄일 것을 제안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대선 기간동안 불법단체로 규정됐던 ‘노사모’‘창사랑’같은 후보자의 정치 사조직을 대폭 허용하는 등 선거법에 대해 유연한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분위기다.
사실 그동안 우리의 선거법은 ‘전과자를 양산하는 제도’라며 빈축을 사왔다.
선거법에 발목을 잡혔다하면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업무 집중력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그나마 80만원 이상 벌금형 해당자는 여지없이 도중하차해야 했다. 설혹 8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현직을 유지한다 해도 주민들은 결국 전과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위임한 꼴이 되고 만다.
선거 때마다 선거 관계자들은 유리그릇 만지는 기분으로 선거를 치른다고 말한다. 뭐든지 안되는 것 투성이인 법 조항 때문이다. 명함돌리면 걸리고 밥 사주면 걸리고. 사람들 놀러갈 때 돈 건네면 걸리고…. 선거법 조항은 요리 저리 얽힌 거미줄처럼 선거출마자들의 발목을 잡기 일쑤다.
그렇다고 선거법이 존중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단속행위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그저 선거법망을 잘 피해 걸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선거법 위반은 ‘죄의 유무’가 아니라 단지 ‘재수의 유무’차이일 뿐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이 때문인지 선거법에 연루된 당사자들에게서는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실정이라면 처벌의 의미가 없다.
기존 정치인의 의정보고서가 훨씬 더 사전선거운동에 저촉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도 기성정치인은 되고 신인은 안된다는 선관위의 이중잣대야말로 선거의 공명성을 해치는 일이다.
유권자가 적합한 후보를 선택하려면 무엇보다 각 후보들의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처럼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규제일색의 선거법으로는 후보자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이런 차에 뒤늦은 감이 있지만 선관위가 선거법 개정을 통해 규제를 완화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
민주주의의 선배 격인 미국만 해도 선거에 나서는 각 후보의 선거운동에 대한 문호를 활짝 개방한 상태다. 그러고도 우리의 선거판보다 훨씬 더 민주적인 분위기로 별다른 부작용없이 선거를 치르고 있다.
후보의 선거운동은 자유롭게 해주되 확실하고 명분있는 금기사항(금권선거 금지 등)을 정해놓자. 그리고 적발된 위반자는 정치생명이 끝날 정도의 강도 높은 단죄를 가하는 거다.
그것이 선거제도의 본질을 되살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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