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8-16 16:02:59

(10) ‘낮에 뜬 별’들의 행진

묘소의 위치를 그린 약도? 서병천은 왠 꿍꿍잇속인지, 한참동안 입심 좋게 엮어나가던 장편역사소설 같은 기담괴설(奇談怪說)을 싹독 자르듯 입을 다물어버렸다.

왜 저럴까? 혹시 신들린 무당 흉내 내느라고 부리는 주술…?

이양국 부자는 자못 당혹해질 수밖에 없었다.

“묘소의 위치가 어디일 것 같습니까? 제주도로 되돌아왔던 건 아닐까요?”

서병천은 마치 퀴즈문제를 낸 기분인 듯, 울어도 시원치 않은데 히죽 웃었다. 이양국 부자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무룩해 있을 뿐이었다.

“천만 뜻밖에도 일본 땅 ‘쓰시마’(對馬島)이지 뭡니까.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천일야화의 한 토막인들 그보다 더 괴이쩍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는 혼자 씨부렁대고 나서 냉담한 분위기에 기가 꺾인 듯 잠시 머뭇거린 끝에,

“조정의 외교관인 아드님이 일본을 다녀오는 길에 ‘쓰시마’를 찾아갔었나 봅니다. 족보에도 사연이 적혀 있더군요, 약도를 보고 묘소를 찾아내게 되었다는데, 커다란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는 겁니다. 묘비에는 어느해 어느달 어느날 몇시에, 아들이 찾아 올 거라는 글이 새겨져있어서, 소스라치게 놀랐었나 봅니다. 아드님은 그제서야 제주의 명당을 포기한 자신의 어리석은 행위에 대 뉘우쳤다지만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서병천은 울먹거리다 한숨을 몰아쉬었다.

그것으로써 서병천은 천일야화가 무색할 집안의 숨은 일화(逸話)를 마무리짓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 셈이었다.
“자네도 직접 현지에 가서 확인을 했는가?”

“네, 근년에는 성묘를 다녀오지 못했습니다, 일본에서 학교 다닐 때엔 해마다 벌초도 하고 참배를 했었지요”

“아쉬운 일이군! 2백여년 전에 한라산 기슭에 8대 할아버지 시신을 모셨더라면 이조시대가 단축될 수도 있었을 터인데…. 자네는 이제부터 그 명당을 되찾겠다는 건가?”


“결과야 어떻든 노력은 해 볼 작정입니다”

“임금님 감이 낳을 명당이 한라산 기슭에도 있고, 산방산 꼭대기 어느 지점에도 있다는 말이 짜하게 펴져 왔었어. 지금은 왕조시대가 끝났으니 대통령 감 낳을 명당이라고 해야겠지? 잘 해보게나! 부디 소원성취하길 비는 바일세, 자네의 그 불타는 야망이 부럽다니까”

“고맙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성원에 힘입어서 더욱 분발할 것입니다.”

서병천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진지한 모습 감격해하는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꾸벅거렸다.

“그런데, 서형은 진짜로 개성에서 보따리를 싸고 제주도로 떠나오신 겁니까? 그래서 한라산기슭을 구석구숙 누비기로 작정을 하셨다구요? 명당 선호사상에 설하니 현혹되신 건 아니겠지요?” 이만성은 오랜 침묵 끝에 비꼬는 목소리로, 질문 아닌 질문을 던졌다.

“뿌리 찾는 정신이라고 할까요?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듯이 자연의 이치도 과학을 초월한 것이니까요. 이제부터 ‘성지’중의 성지인 제주땅에서 살기로 결심을 굳혔습니다.

‘탐라의 영광’도 떠올려 볼 생각이구요”

“대단한 정치적 야망이군요. 그런데, 풍수지리에 대한 지식은 어느정도이신지?”

이만성은 이번은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기초적인 이론은 터득이 되어 있지요, 앞으로 한라산 기슭을 손바닥 들여다 보듯 들여다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름’과 계곡과 동굴들을 낱낱이 그림으로 그리고, 속속들이 파악할 때까지 구석구석 탐방을 할겁니다. 두고 보세요, 멋진 산악지도 즉 오름지도를 내 놓고야 말 거예요”

“아! 1백개도 더 될 ‘오름’과 여기저기 땅속에 파묻혀 있는 동굴들을 일일이 답사해서 발굴하고, 그래서 ‘오름지도’를 그리실 작정리라니까 제주도 역사에 빛나는 기록을 남길 수 있는 탐험이 되겠군요. ‘탐라의 영광’도 떠올리시겠다니…감탄할 뿐입니다.”

이 때였다. 바깥에서 색다른 인기척이 들림과 동시에 젊은 사나이 하나가 마당안으로 고개를 디민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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