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신의 실크로드기행

‘시끌벅적’ 소란스러운 기차승객

시민일보

| 2003-08-18 16:09:44

기차여행에서 상중하의 침대칸 중 맨 아랫칸의 하칸이 좀 넓고 편안하다. 이 때문에 나는 조금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아랫 침대칸 기차표를 샀는데 윗칸의 사람들로 인해 나는 사진 정리는커녕 어제 오후부터 지금까지 침대 한 켠에 쭈그리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밥을 먹을 때마다 어린아이가 침대커버에다 음식을 질질 흘리건 말건, 더러운 신발을 신고 질질 끌고 다니던 말던,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을뿐더러 내가 정리하려고 펼쳐놓은 사진들조차도 자기들 맘대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보면서도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들처럼 미안하다는 말은 도무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윗칸에서 내려와 다리를 벌리고 잠을 자는 아줌마는 도대체 나에게 어떻게 하라는 건지 답을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사람들이 이름 모를 간이역에서 내려주니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바깥의 온도가 39도까지 올라갔지만 시원한 에어컨 덕택에 더위를 모르고 기차여행을 하고 있다.

서 투르키스탄을 기차여행 할 때면 더위에 침을 질질 흘릴 판인데 서로가 하나씩 장단점은 있었다.

그래도 나는 무더위에 지친 서 투르키스탄의 기차여행이 중국의 기차여행보다 백번 좋다.

우선 침대칸 하나 하나가 큼지막해서 편하고 조그마한 것 하나하나 그냥 넘어갈 만한 사소한 일까지 예의를 지키는 매너는 침이 마르도록 칭찬해도 좋을 듯 싶으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는 내 목소리가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의 다정스런 그들의 대화는 중국의 기차여행에서는 경험을 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물론 눈이 부실 정도의 금발과 갈색의 아가씨들을 빼놓을 수 없다.

투르키스탄의 지역이 상당히 넓은 곳이지만 동서지역의 주택들도 상당히 차이가 났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폐허에 가까운 집들이 중국 쪽에 밀집되어 있다면 서쪽은 탁트인 개방형의 집들이 울창한 나무들과 함께 하고 있어 조금의 답답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행은 역시 사람이 따뜻한 지역으로 떠나야 제 맛을 알 수 있다.

먹고 자고 기차 창 밖 구경하고 사진 보며 책 읽고 이 보다 더 게으른 기차여행이 있을까 싶다.

이런 게으른 기차여행도 부지런하지 않고 계획 없는 무질서 속에서는 얻을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

3041km를 42시간 하고도 15분을 더 달린 다음 쉬지 않고 남은 689km를 7시간 동안 더 뛰어와 베이징에 겨우 도착했다.

3년 만에 찾은 정저우 역에서 같이 달려온 네 명의 중국 군인들에게 아침겸 점심을 얻어 먹은 후 좌석도 없는 기차표를 끊어 정말로 지저분한 기차를 타고 7시간을 구역질 속에서 와야만 했다.
여행전문가 kapabah@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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