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기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08-23 16:45:46
{ILINK:1} 요즘 국정홍보처가 죽을 맛이다.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AWSJ) 21일자에 게재된 정순균 국정홍보처 차장 명의의 기고문에 ‘정부부처가 기자들에게 술.식사를 대접하고 정기적으로 돈봉투를 돌렸다’는 내용이 포함돼 일고 있는 파문 때문이다.
정 차장은 웨스트리트저널 아시아판(AWSJ)이 ‘노 대통령의 대언론(President Roh vs. the Press)’ 제하 사설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일부 언론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을 비판한데 대해 21일자로 반박문을 투고했다.
그러나 이 반박문 중 ‘과거 정부는 긍정적인 기사를 기대하며 음성적으로 로비를 했고 향응ㆍ촌지 등으로 언론과의 관계를 유지했다’와 ‘한국기자들이 사실에 대해 확인 과정 없이 기사를 작성한다’는 내용이 번역과정을 거치는 동안 해석의 오류로 ‘정기적으로 돈봉투를 돌리고 한국기자들이 정상적인 취재행위에 근거한 보도를 하지 않는다’로 와전됐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국내 언론계의 반발은 물론 한나라당은 나라망신이라며 관계자 엄중문책까지 들고 나왔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바라보는 여론은 어떨까.
정 차장의 기고문이 해석상 오류로 비록 와전됐다고는 하나 현실적인 사실과 다르지 않다는 냉정한 반응이다. 오히려 속이 시원할 정도로 잘 지적했다는 반응도 있다.
또 언론을 향해서는 흥분할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는 주문도 있어 눈길을 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반성문’을 떠올렸다.
반성문 쓰기는 당시 학교교육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행해진 처벌 중 하나로 일부 모범생을 제외하고는 누구나 한번쯤 써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특히 저학년으로 내려갈수록 같은 내용의 반성문을 반복해서 쓰는 일도 있었다. 본 기자 역시 초등학교 3학년때인가 무슨 잘못에서였는지 동일한 내용의 반성문을 50번 쓰라는 선생님 지시를 이행하느라 팔이 부러지는 듯한 아픔을 경험한 바 있다.
주입식 교육이 주를 이루던 시대적 상황에서 벌어졌던 일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그 시절 학교교육이 긍정적으로 평가받아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
바로 반성문 쓰기다.
반성문 쓰기는 스스로의 잘못과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을 깨닫게 해주는 가장 확실한 인성교육의 통로였다.
오늘날 이 사회가 ‘네탓’ 공해로 어지럽혀지는 이유는 스스로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데 기인하고 있다. 무슨 일만 생기면 남의 탓 타령에 거품을 무는 풍경은 흔하다.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문 쓰기’를 시도해보자.
남의 탓이 아닌 ‘내탓’의 시각일때 느낄 수 있는 ‘삶의 여유’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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