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CEO가 22년 공직경험 강연

“벼슬자리는 여관쯤 여겨라”

시민일보

| 2003-08-26 17:44:40

“벼슬자리를 자고나면 길떠나는 여관으로 여기며 공직생활을 해야 한다”

26일 수안보상록호텔에서 열린 건축분야 민원공무원 연찬회에서 20여년간 건설교통부 기술직 공무원으로 젊은 시절을 보낸 50대가 이제 대기업최고경영자(CEO)로서 공직생활에서 겪은 경험과 추억담을 후배 공무원들에게 강연하고 있다.

주인공은 현재 쌍용엔지니어링㈜ 대표이사인 안영기(56·사진)씨.

지난 1968년 7급 토목기술직으로 공직에 첫 발을 내디딘 뒤 1990년 지금의 사무관인 토목기좌로 그만두기까지 안씨는 22년간을 모범 공무원으로서 봉사와 희생을 아끼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훗날 내가 허가한 건축물이 나의 인생이며 예술이다’는 자존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공직을 지낸 삶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당시 건교부 업무를 이해하지 못한 낙하산 인사 장관의 비현실적인 정책에 반대하는 뜻으로 장관의 정례조회 때 전 직원과 함께 퇴장한 안씨의 유명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어쩌면 이 일이 사표를 내게된 결정적 계기였는지 모른다고 한다.

안씨는 “공직사회는 더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고 한계만 있었다. 이상이 있어도 법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며 “윗사람에 비위맞춰 출세하려는 공직사회에 미련이 없었다. 더 있으면 내 인생이 금갈 것 같았다”고 공직을 버렸던 그때를 회고한다.

“소신이 없는 자는 공무원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소신이 있는 자도 공무원을 할 수 없다”는 그의 공직 철학. 소신을 제대로 펼치기 힘든 공무원의 비관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안씨는 공직생활 중 항상 공부하는 자세를 통해 판단력을 기르고 공정성을 키워야 충실한 공복으로 활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신조로 삼아 배움에 대한 열정만큼은 지칠 줄 모르게 지켰다.

그는 지난 1979년 토목시공기술사 자격증을 따고 직장에 다니면서 대학원 공부도 했고 공직을 그만둔 뒤 도로 및 공항기술사, 한양대대학원 공학석사, 토목품질시험기술사, 경기대대학원 공학박사까지 잇따라 취득했다. 그렇게 공무원을 그만뒀지만 공무원과의 인연은 쉽게 끊어지지 않았다.

건설공사의 품질관리 분야에서 뛰어난 현장의 실무감각과 이론을 갖춘 기술인이었던 만큼 그에게 각종 기술공무원 교육기관 등에서 강사 초청이 이어졌던 것.

그는 쌍용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이전부터 한국건설품질연구원 상임이사, 남광엔지니어링 부사장 등 민간기업 간부로 재직한 지난 13년 동안 매달 한차례씩 후배 공무원을 위한 강연에 꾸준히 나서고 있다.

그는 “기술적 조언도 좋지만 내가 느꼈던 희망없는 공직사회가 아닌 앞으로 깨어나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하며 후배 공무원들과 만난다”고 말한다.
최은택 기자volk1917@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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