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돼지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09-06 17:23:10

그동안 적법성 여부로 논란을 일으켰던 민주당과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희망돼지는 결국 ‘무죄’로 판결이 났다.

희망돼지란 지난해 대선 당시 노사모 회원들이 일반 유권자를 상대로 자발적 정치후원금을 모은다는 취지로 제작 배포했던 돼지저금통을 일컫는 말이다.

돼지는 인간사회에 복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진 존재다.

간밤에 돼지꿈이라도 꾸고 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복권가게 앞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타고난 순박함과 번식력 덕분에 돼지는 오래 전부터 인간과 가까웠다. 그런데도 제천의식의 희생물로 사용되는 단골메뉴 역시 돼지였다. 지금도 굿을 할때나 동제를 지낼 때는 돼지머리가 등장하곤 한다.

또 돼지를 사는 꿈을 꾸면 큰 재물이 들어올 길조로 받아들였고, 돼지가 교미하는 꿈 역시 사업이 번창하거나 축하금을 받을 일이 생기는 것으로 기대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선거자금 모금과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희망돼지 분양’을 이용한 것도 돼지의 이같은 기복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어찌됐건 그는 결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는가.

그런 희망돼지가 대선기간 중 중앙선관위에 의해 불법선거운동으로 찍혀 법의 심판대에 오르는 신세가 됐던 것이다.

당초 대전 지법 등 전국 5개 지법·지원에서는 희망돼지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 유죄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던 것이 이번에 서울지법에서 무죄 판결을 통해 노사모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개운하지 않다.

도대체 무죄라는 것인지 유죄라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법 적용이야말로 절대적인 기준으로 평가돼야 한다. 그런데 지역에 따라 어디서는 유죄가 되고 어디서는 무죄라는 판결이 나왔으니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법’이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닌 듯 싶다.

지금 검찰은 희망돼지의 무죄판결에 대해 “희망돼지를 공짜로 시민들에게 나눠준 것은 선거법에서 금지한 기부행위로 볼수 있어 유죄” 판결을 내린 부천 지원과 “선거법이 금지한 상징물판매로 볼 수 있다”며 유죄를 선언한 의정부지원의 판결에 기대를 걸고 다시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쯤되면 희망돼지는 검찰에게 골치덩어리 대접을 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민에게 있어서는 말 그대로 여전히 ‘희망’으로 남아있다.

지금 시기야말로 정치개혁을 갈망하는 국민의 염원이 알알이 박힌 희망돼지의 존재가 필요한 시점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에서 제기되고 있는 신당논의나 ‘물갈이’ 논의도 알고 보면 그런 국민의 염원에 부응하기 위한 몸부림 아닌가.
희망은 그저 희망 그대로 보아야 한다.

쓸데없이 이리저리 뒤흔들어봤자 득 될 것 하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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