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09-08 19:35:21

(8) 불을 뿜는 海女示威

“여러분, 우리는 힘을 합쳐 조직적으로 투쟁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 도전해온 악당을 맞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합니다.

그러나 싸움이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싸움은 수단이자 방법이지 목적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목적은 무엇일까요?”

흥분된 목소리로 열변을 토하다 말고, 이만성은 질문을 던지면서 말을 멈췄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의 얼굴을 싹 훑어보았다. 호롱불이 어슴푸레한 불빛이어서, 얼굴 위에 떠오른 감정들을 정확하게 읽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목숨을 내걸고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꿈틀거리고 있음을, 눈빛들은 말해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네, 저요. 제가 말씀드릴게요”하고, 야무진 목소리로 자르듯이 말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학생, 그는 중등부 소속의 학생이었다.
“어디, 얘기해봐요!” 이만성이 고개를 끄덕하고 쾌히 승낙했다.

“저는 아니 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싸움의 목적이 승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단과 방법이 좋더라도 싸움이 싸움으로 끝나버린다면 희생만 있을 뿐, 피 흘린 댓가를 받을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싸움은 이김으로써만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상입니다.”

여학생은 글을 외듯 단숨에 장광설을 폈다.

“좋았어요. 바로 그거야. 내가 하고 싶은 얘기, 아니 여러분 모두가 하고 싶었던 얘기를 명쾌하게 들려주었어요. 자, 박수를 쳐줍시다.”

이만성이 먼저 흐뭇한 얼굴로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60여명의 학생들외에 해산하다 남은 일부 군중들도 가세해서 뜨겁게 손뼉을 쳤다. 가슴속이 터질 것처럼 끓어올랐던 슬픔과 아픔과 분노의 숨통을 열어주는, 통쾌한 박수소리는 교실을 한참동안 뒤흔들었다.

박수소리가 멎자 이만성이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여러분은 맘속의 칼을 뽑아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입니다. 이미 진명의숙 이곳은 우리 모두의 운명과 이어지는 역사적인 전쟁터이고, 우리들은 그래서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공격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아무리 천하무적을 자랑하는 강적이라 해도, 반드시 때려잡고야 말겠다는 무서운 결의가 다져져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적의 20명 2백명과도 맞먹을 수 있는 우리의 전부 2명이 적에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20명 아니 2백명의 적을 무찔러 섬멸시켜야겠습니다. 최상균과 최상수, 그치들은 일본제국주가의 물러가기 바쁘게 막강한 기둥서방을 새로이 맞아들인 겁니다.

일제 앞잡이 시절보다 더 무서운 주둔군의 앞잡이로 변신을 한 거예요. 제 버릇 개 못 주고, 진짜 제 세상을 만난 기분으로 설쳐대기 시작 했다구요.

조카딸을 하수인으로 내세워서, 우리의 동료들을 농락하고 고귀한 목숨까지 앗아가고 말았지 않습니까? 자, 여러분! 우리는 칼을 뽑았으니 적진을 향해 돌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정의를 위해 싸우는 정의의 특공대입니다.

그런데. 정의에는 용기와 박력이 따라야 하고, 또한 지혜가 곁들여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힘과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지요. 자, 우리 이제부터 중지(衆智) 즉 모두의 지혜를 하나로 모으기로 할까요? 그래서 불행한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폭넓고 깊이 있는 의견을 수렴하기로 합시다.”

이만성의 긴 얘기는 일단 매듭을 짓고, 비상대책회의 형식으로 절차를 바꿨다. 회의형식으로 분위기가 달라지자, 모든 학생들의 의견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공통을 이룬 것은 최씨집으로 쳐들어가서, 하늘의 뜻이자 민중의 뜻이 준엄함을 보여줌으로써 삶과 죽음을 판가름하는 최후의 담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즉석에서 합의를 보았고, 당장 행동으로 옮길 것을 소리 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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