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책특권 유감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10-04 17:46:29

가끔 당리당략에 치우쳐 국익을 저해하는 정치인을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있다면 오늘날처럼 정치판이 이렇게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최고급 인재 그룹인 정치권은 ‘선거’라는 치열한 검증과정을 통해 형성된다. 확실한 검증과정으로 순도 100%를 보장 할 만하다.

그런데 일단 금뱃지를 거머쥐고 나면 사람이 달라진다. 그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망가지는 정도로 전락하고 만다. 물론 본인 스스로 자신의 전락에 대해 깨닫고 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단 바깥에서 보기에 그렇다는 거다.

왜 그렇게 보이는 걸까.

1차적 원인은 당론 때문이다.

정당에 속해지고 나면 정치인은 개인의 소신보다는 소속 정당의 당론을 우선으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는다.

당론은 거역할 수 없는 절대절명의 지상명령이기도 하다. 무자비한 당론의 횡포 앞에서 의원 개인이 가지고 있던 자존이 한낱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 정치판의 현실이다.

최근 송두율 교수와 관련해서 벌어지는 한나라당의 정치공세만 해도 ‘당론’으로 무장한 무모한 충성심의 발로가 아닐까 싶다. 송교수 사건의 국정원 조사결과를 언론에 공개한 정형근 의원은 3일 “현정부 핵심에 북한과 연계된 세력이 있다”고 말했으나 다음날인 4일 오전 교통방송에 출연해서는 “북한과 연계된 세력이 누구이며 증거를 갖고 있느냐”는 사회자의 집요한 질문에 “정황증거만 있지 실증은 없다”며 말을 뒤집었다. 전형적인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전이다.

이로 인해 야기되는 사회적 혼란은 고스란히 국민 몫이 된다. 고단한 민심에 대한 정치권의 배려가 아쉬운 대목이다.

문제는 국회의원이 갖고 있는 면책특권이 왜곡된 형태로 사용되는데 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직무상 행한 발언과 표결에 관하여 국회 밖에서 책임을 지지 아니하는 것을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것이 면책특권이다. 이는 자주성과 독립성이 보장된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최근 들어 국회의원의 면책특권 남용 정황이 심각해졌다. 행정부를 견제하기 위한 국회의 대표적인 권리가 무분별한 의혹제기와 정치공세의 소도구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다.

송교수가 민주투사인지 거물간첩인지는 검찰의 수사와 법원의 판단이 남아있는 만큼 정치권에서 먼저 나설 일이 아니다. 매카시즘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벌이는 감정적 공방은 결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치권이 이를 강행하는 것은 면책특권을 악용하는 사례다.

따라서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 아무리 국회의원이어도 외관상 직무행위로 볼 수 없는 발언 등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제동장치를 만들자.

의원 스스로도 자신의 신분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발언 하나하나 신중에 신중을 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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