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보고 싶다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10-21 19:38:06
{ILINK:1} 우리 속담에 뭐 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는 말이 있다.
또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의 티끌을 나무란다는 말도 있다.
지난 20일 귀국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행보를 지켜보노라니 우리 선인들의 풍자가 참으로 절묘하다는 생각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차남 결혼식과 부친 추도식 참석을 위해 귀국한 이 전 총재의 귀국 일성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날 세우기’였다.
그는 ‘재신임 관련 언론보도를 보면서 어처구니없었고, 나라가 혼란스럽고 국민이 모두 불안에 떨고 있는데 대통령이 어렵다고 해서 재신임이라는 정치도박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물론 대통령을 비판한 그의 발언내용에 하자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가 책임에 대한 의무감을 가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비록 좌절되긴 했어도 제1야당의 총재로 두 번씩이나 야당의 대통령 후보로 나서 시절의 한때를 풍미했던 그다.
그가 정치권 어른이 져야 할 책무의 부채감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실을 주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가 공항을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그토록 집착했어야 했는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더구나 그 자신 역시 측근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미국에 살면서도 측근으로부터 일일보고 형식으로 국내 상황을 전해듣고 있다는 그가 설마 자신의 최측근인 최돈웅 의원이 100억 수수사실을 시인한 SK 수사 내용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그의 말대로 그가 정말 이런 스타일 구기는 사건과 무관하고 결백하길 바란다.
그러나 수사 결과가 다르다면 그가 질 수 있는 책임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
또 한가지, 이 전 총재에게 알려주고 싶은 '현실'이 있다.
21일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가 실시될 경우 62.3%가 재신임쪽을 선택하겠다, 만일 불신임될 경우 이 전 총재의 정계 복귀에 대해서는 28.8%가 공감한 반면, 69.1%는 공감하지 않는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이다.
정계 복귀야 개인의 선택사안이므로 참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러나 또 다시 국민을 볼모로 자신의 입신을 세우고자 하는 ‘헛된 꿈’은 접는 것이 낫다.
차라리 그 시간에 무게있는 원로 정치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낫다.
어른이 척박한 이 나라에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는 일 또한 대단히 중요한 자리매김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특히 정치권에서 어떤 연유로든 정계를 떠났던 사람들이 은근슬쩍 되돌아오면서 이런저런 명분을 찾았으나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는 점을 이총재는 분명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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