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 3부자 “화마 꼼짝마라”

인천소방서 서정설씨 가족 화제

시민일보

| 2003-11-06 17:54:45

맹렬한 화염, 숨을 조여오는 유독가스가 난무하는 화재 현장은 사선을 넘나들며 화마(火魔)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하는 소방관들에게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이다. 바로 그 곳을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지키고 있어 오는 9일 소방의 날을 앞두고 화제가 되고 있다.

인천 서부소방서 진압대장 서정설(55)씨 가족이 그 주인공.

세 아들 중 장남 춘석(34·북부소방서 갈산소방파출소)씨, 차남 원석(31·남부소방서 구조대)씨가 모두 소방관이다. 막내 현석(29)씨도 소방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어서 전국 최초의 4부자 소방관 가족이 탄생할 날도 멀지 않았다.

서 대장은 올해로 소방관 경력 29년째의 베테랑. 중장비 기사로 객지를 떠돌다 ‘사회에 더욱 보람있는 일을 해보자’는 뜻을 품고 소방관이 됐다. 위험천만한 직업을 ‘가업’으로 대물림하게 된 데는 대의를 중시하는 서 대장의 역할이 컸다.

“사람은 그냥 걸어가다가도 차에 치여 죽을 수 있습니다. 소방관 일이 위험하긴 하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지요. 아들들이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데 반대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선배 소방관으로서 아들들에게 강조하는 현장 수칙은 피가 섞이지 않은 다른 소방관들이 주문하는 것 보다도 매섭다.

“화재현장에선 주저하지 말고 과감하게 진입하는 것이 인명피해와 재산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론 ‘체력은 소방’ 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으며 체력 관리를 늘 당부하지요.”

그러나 화마를 호령하는 서 대장이라 할지라도 대형 화재 발생시 현장에서 아들들과 조우할 때면 행여 부상이나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4시간 맞교대 근무를 마치고 파김치가 돼 집에 돌아오는 두 총각 아들의 모습도 안쓰럽기만 하다. 서 대장은 그럴때마다 연기와 먼지에 상한 기관지에 좋다는 삼겹살과 소주 몇 잔을 저녁식탁에 올려놓도록 하고 아들들의 고충을 들어 주는 자상한 아버지로 변한다.

동생보다 2년 늦은 지난해 5월 소방관이 된 장남 춘석씨는 “소방차 사이렌 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어머니가 걱정이긴 하지만 한번도 소방관 생활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차남 원석씨도 “개인적으로는 남들을 돕기가 어렵지만 조직을 통해서라도 남을 도울 수 있어서 소방관이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진급에 실패할 경우 내년에 30년 소방관 생활을 정리하게 되는 서 대장은 “초기화재 진압에 큰 역할을 하는 가정용 소화기가 집들이 선물로는 최고”라며 “마지막 바람이라면 더욱 체계적인 재난 관리를 위해 소방청 신설이 조속한 시일 내에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문찬식 기자mcs@simi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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