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마라’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11-24 19:05:02

{ILINK:1} 특검 정국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들고 나온 전략은 명분이 약하다는 측면에서 볼 때 상당히 위험하다. 자칫 이로 인해 국민 정서에 끼칠 ‘누’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24일 의총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이 측근비리의혹사건 특검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국회재의(再議)를 거부하고 전면 투쟁에 나선다는 방침을 정했다.

당 비상대책위는 이날 회의에서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될 경우 국회내에서 농성에 돌입하면서 노 대통령의 하야를 촉구하고, 일정 시점이 지난 후 농성을 풀면서 국회등원 거부와 의원직을 총사퇴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내 제1당인 한나라당이 의원직을 총 사퇴할 경우 이번 정기국회의 법안 및 예산안 심의는 모두 중단돼 입법부 기능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고, 정국은 극한 투쟁으로 치닫게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몇 가지 사례를 겪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엄포’가 공연한 으름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 강경 대응 쪽으로 입장을 정한 것은 어디까지나 한나라당의 자유의사 표현으로 우리가 관여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이 문제다.
사실 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 행사는 헌법이 정하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따라서 설혹 대통령이 국회가 제출한 법안에 대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다. 또 국회 역시 이에 대해 재의결을 시도하면 그 뿐이다.

그런데 그동안 재의결하겠다고 외쳐대던 한나라당이 하루아침에 재의를 거부하고 ‘투쟁’을 하겠다는 쪽으로 입장을 바꾼 것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이 같은 한나라당의 재의 거부 방침은 결국은 다분히 총선을 겨냥한 당리당략일 뿐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더구나 대선자금 수사 협조를 거부하겠다고 나선 것 역시 한나라당의 본색을 드러낸 것으로 밖에 비쳐지지 않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이니 의원직 총사퇴니, 예산심의 거부니 하는 ‘방패’를 내세우는 행위는 그 덩치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이 같은 방식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의석에서 절대적 열세를 보이던 야당이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극한 투쟁방법이었다.
무소불위의 괴력을 보이고 있는 한나라당이 이를 모방하는 행위는 가관이 아닐 수 없다.

만약 한나라당이 검찰의 본격적인 정치비자금 수사를 막고, 내년 총선까지 특검정국을 끌고 가기 위한 전략 차원에서 특검 재의거부를 들고 나왔다면 이 역시 그동안 한나라당이 번번히 두었던 ‘악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지 마라.

급하다고 무조건 고양이를 문다고 다 성공하는 쥐가 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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