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빵한 자객들의 ‘폭소혈전’
낭만자객
시민일보
| 2003-12-08 18:47:00
`두사부일체(頭師父一體)’와 `색즉시공(色卽是空)’으로 연타석 흥행 홈런을 날린 윤제균 감독이 세 번째 작품 `낭만자객(浪漫刺客)’(제작 두사부필름)이 최근 개봉됐다.
때는 병자호란이 끝나고 청나라의 간섭이 노골화하던 조선시대 후기.
여동생 달래(고주연)와 오순도순 사는 게 꿈인 요이(김민종)는 돈을 벌기 위해 예랑(최성국)이 이끄는 `해결사’ 조직 낭만자객단에 들어간다.
박수와 바람난 첩을 잡아달라는 의뢰인의 부탁을 받고 현장을 덮쳐 불륜 남녀를 끌고 가던 낭만자객단은 숲속에서 길을 잃어 폐가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이곳은 한맺힌 처녀 귀신 5명이 살고 있는 흉가. 신이를 비롯한 4명은 인간을 죽인 뒤 생명의 눈물을 천 방울 모아 극락으로 가려 하지만 향이(진재영)만은 인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999방울을 모으고 이제 마지막 한 방울을 남겨 놓은 상태에서 자객단이 들이닥쳐 이를 꿀꺽 마셔버리고 만다.
처녀 귀신들은 기가 막히고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하는수 없이 자신들의 한풀이를 위해 원수인 청나라 무림 고수 사룡을 죽여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간단한 초식조차 모르는 낭만자객단에게는 `미션 임파서블’일 수밖에 없어 보다 못한 처녀 귀신들은 영혼검법을 전수한다.
광고회사 출신의 윤제균 감독이 충무로에서 오랫동안 내공을 익힌 감독들도 이루지 못한 빅 히트 행진을 벌이고 있는 것은 조폭 코미디나 섹스 코미디 등의 유행장르를 선택해 신선한 유머 감각에 `엽기’ 코드를 적절히 배합했기 때문.
학원 비리나 젊은이들의 성 가치관 등 사회적 메시지를 녹여 놓은 것도 큰 보탬이 됐다.
이번에도 최근 들어 방송가와 극장가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퓨전 사극’ 바람과 전세계적인 무협 열풍에 편승하면서 어리숙한 자객단과 요염한 처녀 귀신을 내세워 관객을 유혹한다.
여기에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고를 빗댄 설정으로 사회를 향한 목소리도 빼놓지 않았다.
강한 눈빛이 트레이드 마크인 김민종이 푼수 연기를 선보이고 도회적 용모의 진재영이 걸쭉한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도 역발상의 묘미.
16세기판 나이트클럽 `주리아나’의 춤판과 `취화선’을 패러디한 장면도 재치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윤 감독은 전작들의 성공에 취한 탓인지, 아니면 흥행을 너무 의식한 탓인지 나가도 너무 나갔다.
남자끼리 프렌치 키스를 나누고 상대의 얼을 빼놓기 위해 바지를 내린 채 놀려대는 장면은 실소를 자아내고 이제는 토사물도 모자라 배설물까지 등장시켜 비위를 거슬린다. 이 정도면 지나치게 나간 정도가 아니라 옆길로 샌것 아닐까.
줄거리 전개에서도 숱한 허점을 드러내고 일부 등장인물의 설익은 연기와 과장된 몸짓도 부담스럽다.
윤제균 감독은 데뷔 이후 흥행 불패의 신화를 쌓아나가고 있는 반면 주연배우 김민종은 20여편의 출연작 가운데 이렇다 할 히트작이 없는 형편. 윤 감독의 신화가 무너질지 김민종의 징크스가 깨질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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