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좌제(緣坐制)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3-12-16 19:14:02

{ILINK:1} 연좌제는 근대형법상의 형사책임 개별화의 원칙이 확립되기 이전에 범죄인과 연관이 있는 사람까지 함께 형사책임을 묻던 제도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조 당시만 해도 연좌제가 전근대적인 범죄예방수단으로 통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반역죄의 경우 친족, 외족, 처족 등 3족을 멸하고 그것도 모자라 교우, 학파 또는 동향 등의 관계로 연루된 사람까지 처벌대상으로 삼았었던 역사 속 이야기가 그것이다.

6.25 이후에는 소위 부역자의 가족, 친척들에 대한 법적, 사회적 탄압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로 인해 당시 많은 젊은이들의 인생향로가 180도 달라져야 했다.

그러다가 제5공화국 들어와서야 헌법에 특별히 연좌제 금지규정이 신설돼 사회적인 악습을 제거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보였던 연좌제는 여전히 건재한 채 우리사회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망령의 횡포라고 할까. 그러나 망령의 횡포치고는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힘이다.

최근 정치권이 때아닌 연좌제 바람으로 들썩거리고 있다. 최근 한솥밥을 먹다 정치적 행보를 달리한 의원끼리 일제 강점기 당시 선대의 행적을 거론하다가 생긴 일 때문이다.

굳이 파문의 시발점을 찾자면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이라고 할 수 있다.


김의원은 지난 14일 대통령 직속 `반민특위’ 설치법안과 관련, 민주당 조순형 대표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그의 선친인 조병옥 박사에 대해 `친일의혹’을 제기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모임’ 회장인 김 의원이 기자들과의 간담회 석상에서 친일파 규명법 서명에 민주당 조순형 대표가 서명하지 않은 사실을 밝히면서 조병옥 박사가 친일인사라고 주장했던 것.

이에 대해 조병옥 박사 기념사업회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YS가 명예회장을 맡고 있는 사업회는 즉각적으로 ‘김의원의 망언을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보내고 “김의원이 조대표 인신공격을 위해 새빨간 거짓말로 선친을 욕보였다”며 그녀의 국회의원직 사퇴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양 당사자간 사이에 흐르던 전운은 일단 김의원의 한 발 뺀 ‘사과’로 일단락 졌지만 인터넷 에서는 이에 대한 논란이 여전하다.

조박사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글은 물론 심지어 독립투사로 알려진 김의원의 조부가 백범 김구 암살과 관련됐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이같은 주장들이 해당의원들을 공격하는 재료로 활용되면서 정쟁을 부추키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뭐하는 짓인지…

헌법 위에 군림하겠다는 뜻이 아니라면 공연한 분란으로 가뜩이나 어지러운 정치판을 더 정신 사납게 만들지 않길 바란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