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시민일보

| 2003-12-18 18:15:53

“음, 김군의 그 발상이 괜찮아 보이는군! 관광면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세대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하는 일이니까 시성세대들이 끼어들지 않아도 거뜬히 해낼 것으로 믿네. 돌다리도 두 번 세 번 두드려보고 건너는 심정으로, 빈틈없이 계획 세우고 벼락치듯 밀어붙인다면 태산인들 안뽑히고 버틸 것인가? 승리는 불을 보듯 뻔한거라구. 맘속으로 건투를 빌겟네, 유종의 미를 맺기 위해 최후의 일각까지 흐트러짐 없이 잘 싸워주기 바란다고, 김순익군 이하 특공대원 여러분에게 내 뜻을 전해주게! 편지답장에도 몇 글자 적어 보내겠네마…”

양규일 고문은 무거운 짐을 벗어던졌을 때의 홀가분한 기분으로, 권위주의 냄새를 어렴풋이 풍기면서 찬사를 곁들인 격려의 말을 번드르르하게 늘어놓았다.

“네, 좋은 말슴 잘 알아들었습니다. 여러 동지들에게 고문님의 심중에서 우러난 격려의 참뜻을 전달하겠습니다.”
“고맙네!”

양규일은 앉은 자리에서 몇글자 답장을 그적그려서 김군에게 건네주었다. 그들은 곧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다녀간 순간부터 양규일의 얼굴엔 활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었던 후텁지근한 하늘에, 청량한 가을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눈부신 태양이 머리위에 떠오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편, 관광면민들의 규탄대상이자 공격대상이기도 한 이종상면장도 피부로 위기위식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눈곱만큼도 굴복이나 후퇴란 있을 수 없다는, 불퇴전(不退轉)의 결의가 있을 뿐이었다.
면장이라는 이름의 벼락감투, 그것은 억만금을 준다 해도 넘겨줄 수 없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고 믿고 있는 이종상이었다.

싸워야 한다! 목숨을 내걸고…. 그리고 물리쳐야 하고 이겨야 한다! 저쪽에서 목숨을 요구하면 이쪽에서도 목숨을 빼앗아야 하고, 그래서 면장자리를 사수(死守)해야 한다.
이것이 그의 지론이요 냉혹한 시국관이었다.

그에게는 상술(商術)이 뒷받침해온 머리가 있었고, 한번 붙들었다 하면 죽어도 타의에 의해 내놓기를 치욕으로 아는 뚝심과 배짱을 니생의 전부인양 믿고 살아온, 소영웅(小英雄)적 기질의 사나이였다.
목숨을 팔고 사는 장사, 면민들과의 투쟁, 그것을 이종상은 몸에 밴 상혼(商魂)을 무기로 승부를 겨루려는 얄팍한 전술만이 값진 ‘자구책’임을 깨닫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죽으면 죽었지 어느 누구에게도 굽히거나 죽는다는건 더더욱 말이 안된다면서, 밑지는 장사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자신을 향해 귀따갑게 타이르고 있었다.

“너희들이 유치하게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라고 그냥 주저 앉은채 당하란 법은 없는 것 아니겠냐? 1만5천대 1의 싸움-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두려울게 뭐야? 일생일대 머리에 털나고 처음이자 마지막 싸움인데, 명예를 걸고 겨뤄 볼 만한 싸움이라구! 사내자식 한번 죽지 두 번 죽을손가? 지지리도 못난것들 어디 덤벼보라지! 시대가 바뀌었다면 빨리 눈을 떠야잖아? 멍하니 넋을 잃고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재빨리 민첩하게 움직일 불 알았어야지, 꾸물거리다 몽땅 놓치고 나서 누굴 탓하고 있는게야? 늦잠자다 빼앗기고 나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남의 물건 떼지어 몰려와서 빼앗아가겠다구? 백주의 떼도둑들, 이 이종상은 관광면 면민의 한사람으로서 그리고 공직자인 면장으로서, 몇몇 악질분자의 선동에 휘말려 떼도둑으로 탈바꿈한 몰지각한 무리들을 용서하지 않을테다!”

이종상의 가위 광적이라 할 수 있는 불같은 결의는 하늘을 찌를 것처럼 격앙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빼앗기지 않는다! 1당백 또는 1기당천(一騎當千)이라는 옛 글귀를 문득 떠올리게 하는 야심찬 용어의 주인공임을 이종상은 겁 없이 자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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