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시민일보

| 2003-12-29 16:24:22

아, 저게 인간인가 귀신인가? 날개도 없는데, 지붕위로 날아오르다니, 귀신이 아닌 다음에야 어떻게 저럴수가 있단 말인가?

10명의 특공대원들은 눈을 크게 뜨며 혀를 내두르기에 바빴다.

10여명의 괴한들은 눈 깜짝하는 사이 지붕위로 날아올랐다가 눈 깜짝하는 사이 릴레이 경주하듯 차례차례로 뛰어내렸다.

초인적인 무술실력을 보여줌으로써 상대방의 가슴을 서늘케 하자는 계획된 시위임을 특공대원들은 단박 읽을 수 있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괴한 하나가 이종상이 서 있는 지점으로 걸어갔다.

그때는 이미 특공대원이 수염 거머진 손을 풀고 넋을 잃은채, 멍하니 서있는 상태였다.

괴한은 조심스럽게 이종상을 멀찍막이 밀어낸 다음, ‘야, 이놈아! 개만도 못한 놈아! 너는 애비-에미도 없냐? 네놈 같은 천하의 후레자식을 살려둘 수 없다!” 혼자 악을 쓰고 나서, 괴한은 자신의 몸을 3백60도로 빙그르르 돌렸다. 몸을 돌릴 때 일어나는 괴력을 이요해서 한쪽 다리를 치켜올려 멎었을 때였다.

수염 뽑는 데 이골이 났던 쾌남아 아인 쾌남아는 눈을 흡뜬채, 10m 밖으로 날아가 쿵하고 엉덩방아 찧으며 널브러졌다. 그는 꿈틀거리다 땅바닥에 길게 뻗어 버렸다.

이종상을 포위했던 10명의 특공대원 중 5명이상 과반수가 괴한들의 발에 차여 추풍낙엽이 되었다. 남은 특공대원들은 제자리에 서있자니 몸이 떨려 견디기 어렵고, 뺑소니를 치자니 붙잡히면 살아남기 어려울터이고….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어 진퇴양난, 죽을 맛이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린다면 살아돌아올 수 있다는 믿기 어려운 속담을 떠올리며서 5명의 특공대원들은 말뚝 박힌 듯 제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엄청난 복병(伏兵)이 있언는데도 미리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 했으니 작전미스, 이보다 더 큰 실책이 어디 있단 말인가? 뛰는 놈 위에 나는놈 있다더니, 우리들보다 한수나 두수위인 이종상의 지혜와 술수야말로 인정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구나!

“도대체 너희들 누가 보내서 왔냐? 도선마을의 김순익? 그 놈은 오늘이 자신의 제삿날인줄 모르고 있겠지? 너희들도 마찬가지이구…. 야, 이 꿀먹은 벙어리들아!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볼 용기도 없냐? 바다건너 육지부에서 왔느니라, 백두산 호랑이 몰라? 후레자식만 잡아먹고 사는 호랑이 말이다. 너희들 왜 죄없는 면장님을 끌어내어 행패를 부렸냐? 지금이 과도기이지 도덕도 법도 없는 약육강식의 무법천지 동물의 세계란 말이냐? 죄가 있다면 법으로 다스리게 되어 있는 곳이 인간사회가 아니냔 말이다. 주먹만 믿고 폭력을 즐기는 너희들 같은 족속 싹쓸이하는 임무를 띠고, 산 설고 물선 이 땅을 찾아온 우리들의 고충을 알기나 아냐?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우두머리 괴한은 비꼬는 목소리로 괴소리 개소리 늘어놓고 나서, 서있는 특공대원들의 어깻죽지를 손칼로 한 대식 갈겼다.

육체적인 아픔도 아픔이었지만, 더 아픈 것은 돌이킬 수 없는 추락된 명예-씻을 수 없는 치욕 그것이었다. 우두머리 괴한은, 흐믓한 얼굴로 내려다보고 서있는 이종상의 앞으로 걸어갔다.

“면장님, 속시원히 말씀해 보시지요. 어쩌다 이런 꼴이 된 겁니까? 지금 어디로 끌려가려던 참이었습니까? 대충 말씀해 주시지요!”

“와줘서 고맙소. 당신들이 와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저놈들 손에 개죽음 당했을 거요. 지금 5일시장 장터에 수천명의 군중들이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소. 나를 군중들 앞으로 끌고 가서 면장직을 빼앗고 재산까지도 강탈하려 했다구! 청천벽력도 유분수지 이럴 수가 있나? 대명천지 밝은 하늘 아래서…? 나는 죽으면 죽었지 군중을 선동해서 강도짓 하는 주동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단 말야!”

이종상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면서도 단호하게 소신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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