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고뇌

화제의 신간 - 꽃을 잃고 나는 쓴다

시민일보

| 2004-01-12 16:51:17

한국 현대문학의 출발선이었던 식민지 시절에 쓰인 자전적 소설만으로 엮은 소설선집이 출간됐다.

‘한국의 자전적 소설’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 선집은 ‘꽃을 잃고 나는 쓴다’ ‘구보 씨의 얼굴’ 등 두 권으로 구성됐다.

이번 소설선집에는 1920~40년대를 풍미했던 작가들의 소설적 성취, 식민지 조국의 현실과 풍광, 황국신민화를 강요받는 상황에서 절망하고 고뇌하는 지식인 작가들의 내면풍경, 개인의 삶과 사회적 삶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 등이 잘 드러나 있다.

제1권 ‘꽃을 잃고 나는 쓴다’는 당대 사회상을 반영한 작품을 실었다. 일본의 사소설처럼 주관적 경험에 의지한 작품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에서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하는 작가들의 사상적 면모를 드러내는 작품들이다.

작가의 프롤레타리아 이념이 드러나는 강경애의 ‘원고료 이백 원’, 현실에 대한 절망과 환멸이 표현된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 법화경적 세계 인식을 보여주는 이광수의 ‘육장기’, 비전향과 전향의 의미를 묻는 한설야의 ‘태양’과 김남천의 ‘등불‘, 친일문제를 다룬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등 11편이 실렸다.


제2권 ‘구보 씨의 얼굴’은 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실었다. 수필과 소설이 만나는 최서해의 ‘백금’, 실험적 기법으로 자기 이야기를 펼치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형과 애인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쓴 김유정의 ‘형’과 이상의 ‘봉별기’, 신변소설 장르에 집착했던 안회남의 ‘고향’, 남편 임화와의 관계를 드러낸 지하련의 ‘산길’ 등 12편이 수록됐다.

책을 엮은 문학평론가 방민호(국민대 국문학과 교수)씨는 “식민지 시대에 태어난 한국 현대소설의 주인공들은 내면성을 확보한 존재로 나타나기보다 시대의 문제를 자기 문제로 설정한 존재로 나타난다”면서 “자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표현한다는 순진한 에고이스트가 한국의 작가 가운데는 없다.

이것이 한국의 자전적 소설이 일본의 사소설 전통과 확연히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북폴리오 刊. 각권 330쪽 내외. 각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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