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체의 진수를 맛본다
‘과천시절 탁본展’ 과천시민회관서 내달 4일부터 열려
시민일보
| 2004-01-27 18:21:14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10여년간의 유배생활을 끝내고 1852년부터 71세로 사망할 때까지 말년을 부친의 묘소가 있는 경기도 과천에서 보냈다.
이 시기는 추사체가 무르익은 시기로 과노(果老), 병과(病果)와 같이 과천시절 즐겨 사용했던 별호로 낙관한 작품중에 명품이 많다.
추사와 과천과의 인연을 기리기 위해 과천시와 한국미술연구소가 2월4일부터 18일까지 과천 시민회관에서 개최하는 ‘추사체의 진수, 과천 시절-추사 글씨 탁본전’에는 이 시기 작품들을 중심으로 추사 글씨의 탁본 70점이 전시된다.
전시 작품들은 전각이나 누각의 현판들처럼 대자(大字) 위주의 작품들로, 대부분이 원본은 산일(散逸)되어 각(刻)이나 탁본으로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탁본 중에는 죽기 사흘전에 썼다는 서울 봉은사의 현판인 ‘板殿’이 포함됐다. 속된 기운이나 기교가 없어 고졸(古拙)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글씨로 추사가 유언같이 써 놓고간 글씨이다.
1847년 팔공산 은해사 화재로 전각들을 다시 짓는 과정에서 추사가 쓴 현판중의 하나가 ‘一爐香閣’이다.
‘小靈隱’은 해남 대둔사(현 대흥사)의 기어자홍, 수룡색성 두 스님에게 보낸 현판. ‘金福奎旌閭碑’는 효행으로 정려문을 받은 김복규의 정려비 비문이다. 예서로 쓰인 것으로 고졸하면서도 기교가 깃들었다. 원본도 전한다.
전시에는 추사의 아낌을 받은 제자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8-1893)이 추사의 글씨를 판각한 작품중 ‘與石坡’ ‘題石坡蘭卷’등 10여점도 나왔다.
제주도 귀양시절 완성된 추사체는 격식이 지나치게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주시기의 강한 글씨체가 과천시절에 와서 승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전시에는 추사가 쓴 비석 글씨의 대부분이 출품됐으며 ‘소영은’ ‘江陵金氏墓碑’등 새로운 비석 글씨도 소개됐다.
홍선표 한국미술연구소 소장은 “일반적으로 비석 글씨를 글씨 중에서 최고의 경지로 여겨 정성을 다해서 썼다”고 지적하고 “추사체 자체가 비석이나 금석문에 토대를 둔 것으로 추사는 비석의 영매적 기능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서체에 접목해서 추사체를 탄생시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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