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의 性도덕이 낳은 ‘착한’ 아내 對 ‘나쁜’ 창녀
화제의 신간 - 역사속의 매춘부들 김지혜 옮김/책세상 刊
시민일보
| 2004-02-08 18:16:57
고대 그리스 정치가 솔론은 매춘을 영리 목적에 이용해 최초로 공창제를 도입하고 그 수익으로 국가 재정을 충당했다.
프랑스 사상가 장 자크 루소는 “남성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인 여성이 아이를 낳다 죽는 것이 영광”이라는 말로 현모양처론을 주창했다.
영국 소호 지역의 창녀 출신으로 현재 프랑스에서 거주하며 집필활동을 펼치고 있는 니치 로버처라는 여성은 저서 ‘매춘부의 역사’에서 매춘과 매춘부의 기나긴 역사를 다루면서 이런 남성 중심 가부장적 성 도덕이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라는 인류사 등식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성(姓)을 매개로 한 묵직한 연구업적들을 내고 있어 여성학자로 분류가 가능할 듯하다.
이번 책 또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사료 섭렵과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지난 92년 영국에서 원저가 출간된 ‘역사 속의 매춘부’(WHORES IN HISTORY)에서 로버처는 “나는 창녀라는 낙인이 억압의 한 형식임을 깨닫기까지 여러 해 동안 고통과 좌절의 나날을 겪었다”고 소회하고 있다.
이 책을 “진심으로 죄책감을 갖지 않는 창녀, 즉 역사에서 가장 사악한 여성의 편에서 썼다”는 저자는 남성들 뿐만 아니라 급진적·혁명적 페미니스트들조차 성매매를 분쇄하기 위해 도끼를 집어들고 매춘을 죄악시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구석기시대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거쳐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긴 인류사와 흐름을 같이한 매춘부의 오랜 역사가 남성 중심으로 점철된 기록임을 일깨운다.
여성을 ‘착한’ 아내 대 ‘나쁜’ 창녀의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데서는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매섭다. 저자에 의하면 여성에게 현모양처를 강제하는 그리스도교의 금욕주의는 그 반대편에다 ‘비정상적’ 여인의 표상으로 매춘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공창제에 대해서는 매춘을 특정 지역에 고립케 함으로써 매춘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하는 성 매매 규제의 다른 얼굴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표방하는 “죄책감을 갖지 않는 창녀” 편에 역사는 무엇인가?
그에 의하면 통념과는 달리 매춘부는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한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성적 억압이 일상화된 가정에서 탈출해 자신의 성적 자율성을 되찾기 위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몸을 팔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매춘이 정당한 산업으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지혜 옮김. 책세상 刊. 688쪽. 2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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