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안희정
우 상 호 열린우리당 서대문갑 지구당위원장
시민일보
| 2004-03-08 18:21:51
그는 하늘색 수의를 입고 면회실로 들어섰다. 안경 속의 예리한 그 특유의 눈빛은 변하지 않았고 말투도 여전했지만 갇혀있는 그의 심정은 복잡해 보였다.
자신으로 인해 동세대 모두가 타락한 것처럼 묘사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의 일단이 드러나는가 하면 노무현 캠프가 엄청난 불법을 저지른 것처럼 매도되고 있는 현실에 답답해하는 느낌도 들었다.
17년 전 그를 처음 만난 곳도 서울 구치소였다. 야권통합운동을 벌이다 집시법 위반으로 두 번째 서울 구치소에 갇혔을 때 그는 옆 사동 독방에 수감되어 있었다.
면회를 가거나 20여 분간 운동을 할 때 복도에서 스치듯 만나면서 한 두 마디 대화를 나누곤 했었다.
짧은 대화 한 두 마디건만 외롭고 답답했던 구치소 생활에서 얼마나 큰 위안이 되었던가. 생생하다.
가장 힘든 게 뭐냐고 묻자 그는 “이번엔 형이 옆방에 없다는 사실이지”라고 답했다.
우리는 모처럼 유쾌하게 웃었다.
감옥에서 나와서 그는 면회 오던 동료와 결혼했고 나는 기꺼이 그의 함재비가 되었다.
내가 재야 생활하던 10여 년간 그도 그 어떤 빛나는 자리를 탐하지 않았고 주변의 조롱에도 아랑곳없이 노무현 옆 자리를 지켜왔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날이 다가왔건만 그는 가장 비난 받는 386이 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것이다.
역사는 종합적 판단을 구하는 것이지만 현실은 늘 변화된 상황에서의 가치와 기준으로 우리를 압박하게 되어 있다.
당시의 관행과 문화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해도 그리고 그 정도의 변화에 기여한 것도 대단한 것이 아니냐 자부하려 해도 민심은 더 엄격하다. 그리하여 안희정은 정치적으로 죽었다.
그러나 젊은 정치인의 때 이른 부패를 욕하는 선의의 혹은 악의의 비판자들에게 묻고 싶다.
역사가 논개에게 어차피 같이 죽었으므로 비긴 것이 아니냐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역사가 논개의 저항방법이 아마추어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역사가 논개에게 애국심은 인정하지만 더럽혀진 여자 아니었냐고 하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한나라당의 그들이 한국사회 어디에 있던 100억의 이익과 100년의 기득권을 위해 움직였을 사람들이라면 안희정은 ‘그곳’에 없었더라면 평범하고 건강하게 살아갔을 젊은이다.
안희정은 정치적으로 죽었다. 과정상의 부패 때문만이 아니라 저주스런 고비용 정치를 껴안고 스스로 역사의 강물에 몸을 던졌으므로, 강물에 떨어졌으므로 죽었다.
내가 달려고 하는 금배지가 나에게 과분한 것이라는 것을 나도 안다.
허영이고 사치라는 것도 안다.
그리고 나도 이미 많이 더럽혀져 있다는 것도 안다. 안희정은 말없이 나에게 이야기 해준다.
그 금배지는 불의한 시대를 안고 역사의 강물에 몸을 던진 논개의 자박(自縛)을 위한 10개의 금가락지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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