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술을 부른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4-03-14 18:46:18
{ILINK:1} 국회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이후 술 소비량이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LG마트에서는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지난 12일 캔맥주 판매량이 전날에 비해 51.7% 급증했으며, 소주도 지난주보다 매출이 12.3%나 늘었다는 것이다.
또 편의점 LG25 수도권 점포 680개 에서는 이날 맥주와 소주 판매량이 지난주 동기 대비 각각 14%와 17% 증가했는가 하면, 롯데마트 33개 전점에서는 이날 하루 소주와 맥주 매출이 지난주 같은 기간에 비해 20% 이상 늘어났다고 한다.
어찌 아니 그러하겠는가. 그날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이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을 지켜 본 국민이라면 그 누구라도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인해 술한잔 마시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웠을 터이다.
국회 탄핵 움직임이 있던 그 전날 필자는 민주당의 모 국회의원을 만나 탄핵에 반대 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그 때 필자가 말한 요지는 이렇다.
“명분이 없다. 국정혼란이 우려된다. 만일 탄핵안이 가결되면, 민주당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극소수 정당으로 전락하고 만다.
한-민공조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간의 양강구도가 고착될 뿐이다. 민주당이 한나라당과 자꾸 손을 잡으면, 그나마 민주당에 애정을 가졌던 지지자들이 모두 떠나 버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동료 의원들에게 이 점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달라.”
본사 정치부장도 한나라당 일부소장파와 민주당 재야출신의 의원들에게 같은 논조로 탄핵안에 반대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들은 마치 우리 정치부장이 열린우리당의 사주를 받아 자신에게 탄핵안 반대를 요청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나라당 소장파나 민주당 재야출신들은 뭔가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기대는 결국 물거품이었다.
사실 지금 상황은 필자의 예견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는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의 지지도는 민노당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히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민노당이 3당이 될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탄핵안 가결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은 겨우 7%대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물론 한나라당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30%대를 상회, 40%대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가관인 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지지율 하락을 언론사 탓으로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국정혼란을 우려하여 충고했을 때는 듣지도 않던 그들이 이제 와서 언론을 탓하고 있으니 어찌 한심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이제 4.15 총선은 불행하게도 인물을 선택하는 날이 아니라 탄핵안 가결을 심판하는 날이 되고 말았다.
필자는 이점이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다.
이 안타까움이 또 술을 부르는 걸 어찌하랴.
정치가 술을 부르는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이 그저 불쌍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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