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뒤의 몸 어떻게 쓰이나

화제의 신간 - 스티프-죽음 이후의 삶

시민일보

| 2004-03-17 20:49:59

“사체는 우리의 슈퍼 영웅이다. 이들은 불길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높은 건물에서 떨어지고 자동차에 올라 건물 벽과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한다..이런 능력을 인류를 위해 쓰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까울까”
‘스티프-죽음 이후의 삶’(메리 로취 지음)은 사후 인간의 몸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추적하고 육체적인 죽음의 의미를 밝힌 책이다.

미국에서 자유 기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실험실과 해부실을 돌아다니며 ‘스티프(stiff)’, 즉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들이 과학사에 기여하는 장면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인체 해부학의 발단은 기원전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였다.

프톨레마이오스 1세는 의료 종사자들이 인체의 작동원리를 알아낼 목적으로 죽은 사람을 해부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죄수들의 시체해부를 장려하는 칙령을 발표했을 뿐 아니라 직접 칼을 들고 해부실에 나타나기까지 했다.

이렇게 해부를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헤루필루스라는 의사는 600명의 죄수를 산 채로 해부했다는 기록도 남아있다. 이후 해부는 죽은 자에 대한 또 한 번의 처벌로 여겨졌다. 18~19세기 영국의 의학도들이 합법적으로 해부할 수 있었던 시체 역시 처형된 죄수의 그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는 해부실을 나와 온갖 실험에 활용됐다. 프랑스의 기요틴(단두대)을 고안할 때, 레닌을 보존처리할 때,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릴 때, 예수의 시신을 감쌌다는 ‘토리노의 수의’가 진짜인지를 밝힐 때도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

오늘날 시체는 자동차의 안전도를 측정하기 위한 모의실험에 쓰인다. 이로써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앞유리, 핸들, 안전띠, 에어백 등이 운전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1995년 ‘외상저널’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사체연구를 통해 차량의 안전장치가 개선된 덕분에 1987년 이후 미국에서만 매년 8500명이 목숨을 건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에어백에 얼굴을 파묻은 시체 1구당 147명, 앞유리에 머리를 부딪힌 시체 1구당 68명이 목숨을 구했다는 계산도 나왔다.


저자는 사람의 유해와 관련된 기이한 기록들도 전한다. 중국 명나라의 박물학자 리스전(李時珍)이 쓴 ‘본초강목’에는 12세기 아라비아의 ‘밀화인(密化人:꿀에 절인 사람의 유해)’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이들은 늘 목욕하고, 다른 음식은 먹지 않고 꿀만 섭취한다. 한 달이 지나면 그는 꿀만 배설하게 되고 그 뒤 사망한다. 동료들은 그를 꿀로 가득 채운 석관에 재워놓고 봉인한 후, 겉에다 몇 년 몇 월인지를 표시한다. 100년이 지나면 봉인을 뗀다”

이렇게 만들어진 ‘인간 밀과’는 부러지거나 상처가 났을 때 내복약으로 쓰였다.

유럽에서도 인간의 유해를 약재로 취급한 경우가 많았다. 18세기 독일과 프랑스의 사형 집행인들은 참수당한 범죄자들의 목에서 흘러나온 피를 모아 돈을 벌었다.

당시 사람의 피는 간질과 통풍, 부종에 효험이 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책은 이밖에 시신의 부패과정, 장의사들의 시신 보존 처리술, 생매장 풍습, 시체를 이용한 퇴비 등 시체와 관련한 갖가지 이야기에 메스를 갖다 댄다.

파라북스 刊. 권 루시안 옮김. 356쪽. 1만4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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