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노 ‘吳越同舟’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07-21 18:53:25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내달 임시국회를 소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는 소식은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원내대표는 어제 오전 한나라당 염창동 당사를 방문한 민노당 김혜경 대표 및 천영세 의원단 대표와 만나 이같이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사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이 서로 대척점에 가까운 이념적 색깔과 태생적 차이에도 불구, 각종 현안을 놓고 공조를 취하는 장면을 연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실제로 지난 20여년간 집권당 또는 제1 야당으로서 보수층을 대변해 온 한나라당과, 진보와 노동자를 위한 정치를 부르짖으며 17대 총선에서 첫 원내 입성에 성공한 민노당이 상상하기 조차 힘들었던 `제휴관계’모습을 곳곳에서 보여 왔었다.

민노당 의원과 당직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과 신한국당이 집권하던 시절에 반정부 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이다.

게다가 당시 집권세력인 그들에 의해 투옥당하는 가슴 아픈 `전과’를 지닌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이런 면에서 본다면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표현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수시로 손을 잡아 왔으니 참으로 세월이 하수상하다고 할 수밖에…

특히 예결특위의 상임위화 문제와 관련, 야 4당 공조라는 `있을 법하지 않던’ 범야권연대가 이뤄지기도 했었다.

그러더니 급기야 어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가 만나 ‘내달 임시국회소집’을 합의한 것이다.

더구나 박 대표가 대표직 복귀 뒤에 다른 여야 대표들을 모두 제쳐놓고 김 대표와 첫 만남을 가졌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그렇다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양당은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일까.

그 해답은 ‘오월동주(吳越同舟)’다.

즉 ‘서로 미워해도 위험에 처하면 정략적으로 돕는다’는 말이다.

‘오월동주’라는 말은 손자병법(孫子兵法)으로 유명한 손자(孫子)가 한말이다.

이를 직역하면 ‘서로 원수지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탄다’는 뜻이지만 거기에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하지만 그들이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바람을 만나게 되면 서로 돕기를 좌우의 손이 함께 협력하듯이 한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

그러나 바람이 그치면 그들은 각기 제 갈 길을 가거나 칼을 들고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모르긴 몰라도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의 미래 모습도 배에서 내린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의 모습과 과히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배에서 내리기 이전에 민주노당은 해야 할 일이 있다.

한나라당이 우호적인 모습을 취할 때에 공동보조를 맞춰 정부의 이라크 파병결정을 철회할 수 있도록 열린우리당과 정부를 압박하는 일이다.

이것 하나만 이뤄내도 한나라당과 민주노당의 ‘오월동주(吳越同舟)’는 대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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