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 보호는 記者의 생명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08-19 19:37:07
{ILINK:1} 미국 연방법원이 18일 한때 스파이 혐의를 받았던 핵과학자 리원호(李文和)에 관한 기사의 취재원을 공개하라는 법원명령을 거부한 미국 기자 5명에게 법정모욕죄를 적용, 벌금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히버트 등 기자들은 법정에서 그들의 취재원을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 범위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정보를 제공했다.
그런데도 법원은 이를 용인하기는커녕, 오히려 ‘법원명령을 거부한 법정모독죄에 해당된다’며 벌금형을 선고하고 말았다.
필자는 언론자유의 초석인 취재원을 밝히지 않을 권리가 미국 법원에 의해 다시 한번 위협받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기자에게 있어서 취재원 보호는 카톨릭 신부가 고해성사를 평생 비밀로 유지하는 것과 흡사한 의무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법원이 기자에게 취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신부에게 고해성사 내용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과 같다고 할 것이다. 이런 요구야말로 미친 짓이다.
기자는 ‘오프더레코드’가 있는 한 절대로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다. 적어도 시민일보 기자들은 그런 신의성실의 원칙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기자에게 있어서 ‘신의’는 기본윤리이자 생명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자들로 하여금 취재원을 밝히도록 강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생명인 탐사(探査)보도의 핵심 요소 중 하나를 침해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해서는 안될 것이다.
탐사보도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숨기고 싶어하는 사건이나 정보를 찾아내 보도하는 것’으로, 즉 ‘국민의 공분을 일으키는 폭로저널리즘’을 일컫는다.
이 같은 탐사보도는 다른 기사에 비해 파괴력이 큰데다 밝은 면보다는 정부나 사회의 부정부패, 비리, 위선 등을 파헤쳐 폭로, 고발할 때가 많다.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취재 대상자나 관련자로부터 비난받기 십상이다.
특히 취재 대상자는 취재원을 알아내기 위해 무진 애를 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취재원을 공개한다면 누가 내부의 부정·부패 사실을 언론에 제보하겠는가.
실제로 우리 신문의 탐사보도 가운데 상당수는 정의감에 불타는 내부 고발자 등 제보자에 의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만일 법원이 이들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역시 히버트 기자처럼 취재원공개를 거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그로 인해 기자가 구금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는 정말 언론의 환경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
아직 사건으로 돌출되지는 않았으나 사건의 잠재성을 갖고 있는 뉴스거리들, 이미 뉴스가 됐으나 더 집요한 후속취재가 필요한 미완성 기사들이 산재해 있다는 말이다.
참다운 언론이라면 이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취재원의 도움 아래 탐사취재를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 연방법원의 취재원공개거부 기자들에 대한 벌금형 선고는 내부고발을 차단, 탐사보도를 무력화시키는 ‘반민주적 판결’이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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