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권 어디까지인가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09-05 19:41:21
{ILINK:1} 지난 5월 11일자 “강남구 특혜인사 말썽”이라는 제목아래 “검찰고위직 친형 봐주기 의혹 제기”라는 발문으로 내보낸 기사와 관련, 강남구는 본보를 상대로 반론보도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에서 우리가 패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의 승리다.
왜냐하면 강남구가 정정보도 요청을 한 것이 아니라 반론보도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정정보도’는 ‘허위보도’를 한 언론사가 스스로 해당 기사가 잘못되었음을 밝히고, 정정기사를 게재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나, ‘반론보도’란 단지 언론의 사실보도로 피해를 받은 자가 해당 언론사에 자신이 작성한 반론문을 게재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정정보도는 ‘허위보도’일 경우에 요청하는 것이고, 반론보도는 ‘사실보도’임을 인정하고 출발한다는 점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다.
여신도 성추문 파문을 일으킨 사이비 교주 정명석씨가 SBS 방송으로부터 반론을 받아낸 것과 같은 이치다. 그는 지금도 귀국하지 못하고 외국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당시 SBS의 보도가 사실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재판부는 반론보도를 하라고 결정했었다.
이번에도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반론보도청구권은 어디까지나 피해자가 언론사의 보도기사에 대한 반박 내용을 게재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에 불과할 뿐, 언론사의 보도내용을 진실에 부합하게 시정보도하여 줄 것을 요구하는 권리는 아니므로...”
그러니까 반론보도를 해주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기본적으로 반론의 기회를 널리 보장하고 있다. 따라서 그까짓 반론보도를 못해 줄 이유가 없다. 강남구가 스스로 사실보도임을 자인하는 것인데 굳이 우리가 이를 회피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여기에서 명백하게 오류를 범하고 있다.
따라서 피해자가 반론을 요구한다고 해서 무조건 들어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는 ‘명백하게 사실에 반하는 경우’에 대해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신문, 방송, 이미 공표된 연구 결과 등에 의해 널리 알려진 사실’, ‘특별한 조사나 검증절차를 거치지 아니하고서도 허위임을 즉각 알 수 있는 경우’, ‘법원이 당해 사건이나 사건의 처리를 통해 현저한 사실로서 증거조사를 거지치지 않고서도 알 수 있는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래서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이 사건에 관하여 보건대, 설령 피신청인의 입장에서 볼 때에 위와같은 반론보도의 내용이 허위라는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이게 무슨 말인가. 강남구의 주장이 허위라는 의심이 들더라도 위의 3가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으니까 그냥 반론을 들어 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한 보도는 우리 신문의 특종기사다. 따라서 재판부의 첫째 요건인 다른 신문이나 방송에 공표된 사실이 있을 수 없다.
또 우리가 이미 충분한 자료를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이미 지득한 사실이 아니라서, 또 특별한 조사나 검증조사를 거쳐야 확인이 가능하기 때문에 허위라는 의심이 가더라도 반론보도를 들어주라는 재판부의 판결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이 같은 반론권의 남용이 결국 권력기관에 대한 언론의 건전한 비판기능을 가로막는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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