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캅’ 등장을 바라는가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09-20 19:55:37
{ILINK:1} 한 재벌 기업이 디트로이트 시를 통째로 강제수용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다. 재벌기업은 그곳에 거주하는 서민들의 생활은 안중에도 없다. 오로지 시를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에 맞서 하루아침에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서민들은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집단봉기에 나선다. 법을 집행해야할 경찰들도 부당한 재벌기업의 횡포를 보다 못해 사표를 던지고 기꺼이 서민 편에 선다.
그러나 재벌기업은 포기하지 않고 폭력단 등을 동원해 그들을 시에서 쫓아내려고 발악을 한다. 이때에 정의의 사자가 등장해 재벌기업가와 악당들을 쳐부수니 그가 바로 ‘로보캅’이다.
이는 ‘어빈 커쉬너’ 감독의 영화 ‘로보캅2’의 줄거리다.
그런데 이 영화와 같은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황당한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 강동석 건교부 장관은 최근 “민간기업이 기업도시를 건설하기 위해 대상 토지의 절반을 땅주인과 합의해 사들이면 나머지 절반의 땅에 대해선 땅주인이 매각을 반대하더라도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고 말했다.
민간기업에 ‘토지강제수용권’이라니, 도대체 이게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인가.
이런 정부의 방침이 현실화 될 경우, ‘토지 강제수용-아파트 분양 자유화’라는 특혜를 통해 기업들은 막대한 개발이익을 거둘 것이다. 반면, 민간기업에게 땅을 강제로 수용당하는 일반국민들은 국민의 기본권인 재산권을 침해당하는 형국을 초래하게 될 것 아니겠는가.
국민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대로 앉아서 당하지는 않을 것이고, 결국 ‘위헌’ 소송이 잇따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 로보캅 영화의 내용처럼 서민들의 집단봉기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특히 정부의 이런 방침은 전국적인 부동산 투기 붐의 재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참으로 위험한 발상이라 할 것이다. 한국은행이 나날이 금리를 낮춰 단기성부동자금이 급증하고 있는 마당에 ‘기업도시’라는 새로운 투기 먹이를 제공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 로보캅에서 디트로이트 시를 통째로 인수하려던 한 재벌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됐던 것과 흡사한 양상이 재연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또 강 장관이 “개발이익의 30%만 기업이 취하고 나머지는 공공 인프라에 쓰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으나, 필자는 이를 믿을 수 없다.
실제로 정부는 지난 3년간 아파트분양을 통해 시행사와 시공사가 천문학적 폭리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걸맞는 세금을 거둔 바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로 기업도시 건설을 통한 개발이익은 고스란히 기업몫이 될 것이다.
따라서 재벌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정부는 이 황당한 계획을 즉각 취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로보캅 영화의 줄거리처럼 온 국민이 정부와 재벌을 향해 집단 항거에 나설 수도 있음을 엄중 경고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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