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개혁파 삼성 앞으로?
심 상 정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4-10-04 21:14:57
{ILINK:1} 이 외로움은 계절 탓인가?
가을의 문턱에서 집권여당 안에서 이른바 ‘386 개혁파’라 불리는 의원들이 삼성재벌 연구소에 가서 ‘경제공부’를 했다는 소식에 씁쓸함이 밀려옵니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한 뜻 자체야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경제주체가 재벌만 있는 게 아닌 데, 딴 사람도 아니고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개혁파 의원들이, 왜 노동자, 서민, 중산층, 중소기업 등 서민경제 대신 재벌경제논리를 배우는 데 앞장서는지 특히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들이 정치권에 들어와서 노동자, 농민, 서민의 경제적 고통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함께 아파해본 적이 있을까 생각하니 더 우울합니다.
얼마 전 이해찬 총리의 특별지시로 총리실 간부들이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일이 있었는데, 정부 관료가 사기업 그것도 재벌기업에 교육을 위탁해 기업논리를 익히는 일이 한국 말고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인지 의아스럽습니다.
참여정부를 이끄는 주축세력의 삼성재벌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잘 나가는 재벌의 효율적 조직 운영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취지에서 자신의 지방자치실무연구소 창립식에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를 초대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재벌의 효율적 조직 운영을 배우려 하는 만큼 노조의 민주적 운영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개발이익을 비롯한 각종 특혜를 재벌에게 안겨주는 기업도시정책이나, 삼성재벌의 숙원이었던 수도권 공장증설 규제해제 조치, 최근 붉어진 청와대 양정철 비서관의 삼성 찬조금 요청사건 등에서도 참여정부와 삼성재벌의 끈끈한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일 사모펀드 도입을 골자로 한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이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열린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합의로 제출된 경제법안에 대해 77명이 반대한 것도 보기 드문 일이라는데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지만, 본회의장에서 반대토론까지 벌인 당사자로서는 못내 허탈합니다.
주식 한 장 사보지 않은 내가 현대 금융제도를 총괄하는 이 법안에 대해 나름대로 전문가 토론, 시민사회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이제 그 중요성을 알만한 데, 난생 처음 들어보는 법안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과연 알고나 판단하는지 의아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국민의 개혁열망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열린 우리당 의원 중에서 이 법안에 반대표를 던진 사람이 단 한 사람이었다는 데 더 허탈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경제민생문제에 대해서 소신을 갖고 있는 여당 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그나마 위로가 됐습니다.
의정활동을 할수록 ‘국회 재정경제위원회는 여야가 구별이 없는 상임위원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나 친일진상 규명 등 정치현안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는 여당 개혁파 의원들이, 경제 민생분야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의정활동에서 느껴왔던 안타까운 마음으로 보기에 정부나 여당 인사들의 ‘삼성 앞으로’는 저 자신의 외로움을 넘어 개혁을 완수할 소임이 있는 17대 국회와 참여정부 전체의 불행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생각해봅니다. 참여정부와 여당 안에 정치사회분야의 개혁파는 있을지 몰라도, 경제민생분야의 개혁파는 없다고.
개혁은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서 일관된 논리와 잣대가 필요합니다.
과거사·국가보안법·언론개혁 등 정치사회분야에서는 개혁을 부르짖지만, 정작 국민생활에 가장 중요한 민생경제분야에서는 개혁의 논리를 재벌의 논리로 대체해버린 게 아닌가라고. 경제민생분야에서 개혁을 포기하고 ‘재벌 앞으로’ 나아간다면,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개혁 여당’의 딱지는 머지않아 떼이고 말 것이며, 이른바 386 개혁세력도 재벌에 포섭된 그렇고 그런 세력으로 역사에 남을 것입니다.
어떤 이는 저에게 민주 노동당이 열린 우리당을 몰아세우는 데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니냐고 따져 묻습니다. 저는 단연코 말합니다. 열린 우리당이 정치사회분야에서 개혁을 이루려 내딛는 단 한 발걸음이라도 민주노동당은 기꺼이 힘을 합칠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민생분야에서 여당 개혁파조차 잘못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앞장서는 상황에서 이를 비판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역사적 소임입니다. 이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정치를 80%의 서민에게 되돌리려는 민주노동당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는 가을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만큼 외로움이 커갑니다.
이 가을 외로움이 계절 탓만은 아니기에, 경제민생분야에서 개혁과 진보가 함께 숨쉬며 국회와 정치를 살리고 서민을 살리는 신바람 나는 정치를 해볼 진정한 개혁의원들을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진심으로 꿈꿔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