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은 ‘右翼광장’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10-07 19:45:17

{ILINK:1} 문화일보 편집국장이 지난 5일 이재용 화백의 만평을 다른 기사와 논조가 맞지 않는다며 일방적으로 누락시킨 일이 있다.

5일자에 실릴 예정이었던 만평은 지난 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반대 집회를 소재로 한 것으로 서울시가 정치집회를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보수단체에는 광장을 개방한 것을 풍자하고 있었다. 편집국장인 필자가 판단하기에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다.

그림으로 보여 줄 수만 있다면, 독자들에게 그 만평을 꼭 보여주고픈 심정이다.

그런데도 문화일보가 이처럼 훌륭한 만평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이유가 무엇일까?

문화일보 김종호 편집국장은 이렇게 해명하고 있다.

“일반 기사와 달리 주장이 담긴 내부 구성원의 칼럼에서는 어느 칼럼은 동(東)으로, 어느 칼럼은 서(西)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만평도 그림으로 나타난 일종의 칼럼으로 해당 만평은 우리가 그동안 써온 사설이나 데스크 칼럼의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물론 김 국장의 이런 주장은 틀린 것이 아니다.

편집국장의 편집방향과 기자들의 내부칼럼이나 사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자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일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열린우리당 한 부대변인의 논평대로 ‘왜 특정세력에 서울광장을 집회장소롤 빌려주었느냐’는 식으로 트집을 잡아 국면을 벗어나려 해서는 안된다”면서 “국론 분열의 해법은 ‘국보법 폐지철회’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었다.

사설과 만평이 각기 다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사설과 만평 중 어느 한쪽을 버려야 한다는 김 국장의 생각은 맞다. 하지만 김 국장의 선택은 옳지 않았다. 굳이 버리자면 사설을 버리는 것이 옳았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서울광장 개장 한달만에 민주노총과 민중연대 등 8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개악 집시법 대응 연석회의’가 서울시에 광장 사용승인을 요청했으나, 시는 당시 “서울광장에서 정치적 성격의 집회를 허용할 수 없다”며 이를 완강하게 거부했었다.

그러던 서울시가 극우단체의 `10.4 국보법 사수 국민대회’에 대해서는 아주 관대하게 사용을 승인해줬다. 물론 잔디훼손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겠다던 방침도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말았다.

오죽하면 서울시가 제 입맛대로 집회를 골라 사용을 허용하거나 불허함으로써 서울광장이 특정세력의 안마당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는 비판이 나오겠는가.

실제로 지난 9월말까지 서울시가 허가한 81건의 행사 중 3건의 정치행사는 모두 보수우익단체들이 독차지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서울광장은 ‘우익광장’이 되고 말았다.

이것은 옳지 않다. 정의가 아니다. 그런데도 언론이 이런 잘못된 일을 눈감아 버린다면, 어떻게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되겠는가.

이런 면에서 김 국장의 주장은 맞지만, 그 선택은 옳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같은 언론인으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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