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포용력이 우선

고 하 승 편집국장

시민일보

| 2004-11-02 19:05:38

{ILINK:1} ‘관포지교(管鮑之交)’로 잘 알려진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춘추전국시대 중국 제(齊)나라의 명재상으로 둘도 없는 친구였다.

당시 악정으로 백성을 괴롭히던 제나라 왕 양공이 암살당하자 두 동생인 규와 소백이 왕의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 때 관중은 규의 참모로, 포숙은 소백의 참모로 각각 전쟁에 참여해 서로 싸우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소백이 승리하고 왕좌를 차지하니, 그가 바로 환공이다.

환공은 규의 참모였던 관중을 포로로 잡아 그를 처형하려들었다. 이 때에 포숙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공께서 제나라만 다스리시려면 이 포숙의 보좌만 받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공께서 이 천하의 배왕이 되시려면 저의 실력으로써는 감당할 수가 없고 관중의 보필을 받으셔야 합니다.”

물론 환공은 포숙의 이 같은 건의를 받아들여 관중을 사면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를 실권자로 중용했다. 이것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관포지교’의 고사성어 유래다.

그러면 그 이후에는 어찌 됐을까?

실권자가 된 관중은 동무인 ‘포숙’을 자신의 후임자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관중이 임종을 맞게 되자 제환공이 먼저 “자네 후임자로 포숙이 어떤가”하고 물었으나, 관중은 “포숙이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쳐 오히려 정치를 그르칠 수 있다”며 다른 인물을 후임으로 추천하고 말았다.

후대에 위대한 개혁가로 알려진 관중이 이처럼 포숙의 ‘포용력’을 문제 삼아 자신의 후임자가 되는 것을 거절했다는 것은 참으로 뜻밖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관중의 예언은 적중했다.

관중의 뒤를 이어 실권자가 된 포숙은 조정에서 간신을 몰아내는 개혁 정치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그러나 포용력이 부족한 포숙의 개혁은 환공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하였으며, 무수한 적을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결국 그의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것이 포용력 없는 개혁정치의 결말이다.

지금 심각한 여야대치정국으로 인해 국회가 공전상태다.

열린우리당은 파행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이해찬 총리가 유감을 표명토록 하는 방안 등 수습책을 한나라당에 제시했으나, 극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이 강경기조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덕룡 원내대표는 주요당직자회의에서 “이 정권을 보면 완전히 갈등유발증후군에 걸렸다”면서 “비판세력 죽이기와 친노세력 키우기 정략으로 나라를 온통 갈등으로 몰아넣는 노무현 정권에 강력히 맞서겠다”며 대여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여당의 ‘포용력부재’를 질타하는 한나라당도 포용력이라고는 터럭만치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관중이 포숙의 정치를 우려했던 것처럼 시민들은 지금 포용력 없는 ‘갈등의 정치’를 걱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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