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골프 선언’ 후기
안 민 석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4-11-25 19:45:34
{ILINK:1} 지난주 정치권의 ‘노 골프’ 선언이 적잖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평소 환경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진 여야 의원 30명이 동참한 이번 선언은 230개에 이르는 무분별한 신규 골프장 허가에 대한 정부정책에 경종을 울리는 취지로 발표한 것이지만 언론과 국회 내부에서는 골프를 안치겠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 촉각을 세운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 선언을 주동했다는 이유로 우리당 내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과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았지만 주말동안 만난 분들은 많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또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을 비롯해 몇 군데 방송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번 선언은 얼마 전 환경운동연합 후원회에 함께 참석했던 민노당 천영세 대표의원님과 제가 즉석에서 초당적으로 10명씩 서명을 받기로 합의하여 시작되었습니다.
민주당은 나설 분이 없어 한명도 서명을 받지 못했고, 한나라당은 이재오 의원이 주도하였습니다.
민노당은 10명의 의원 전원이 골프를 치지 않고, 앞으로 치지 않을 분들이라 서명이 가장 수월하였습니다.
한나라당의 경우 대부분의 의원이 골프를 치고 있는 탓에 3선인 이재오 의원이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8명에 머물렀습니다.
12명이 서명한 우리당의 경우에도 만만치는 않았습니다.
‘남의 취미 생활을 침해해도 되느냐’, ‘정부의 정책을 여당의원이 제동을 걸면 안 된다’는 것부터 심지어 평소 입이 험하기로 소문난 어느 의원께서는 ‘미친 짓’이라고 까지 몰아 부치더군요.
모 의원은 선언 발표 당일 서명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요.
당내 높은 분이 서명에 참여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현재 180개나 되는 골프장이 있는데 참여정부 동안에 신규로 230개가 증설된다면, 참여정부 최대의 실정으로 후세에 비판받지 않을까 저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골프장 18홀을 지으려면 30만평이 필요한데, 이는 축구장 150개 면적입니다.
소수가 놀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골프 비용은 지금보다 훨씬 비싸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환경비용을 당연히 지불해야 합니다.
골프비용을 낮추기 위해 더 많은 골프장이 필요하다는 정부의 논리는 궤변입니다.
또 건설경기부양을 위해 골프장을 증설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위험하기 짝이 없습니다.
경기는 불황과 호황이 반복되는 주기적 특성이 있지만, 환경은 한번 망가지면 복원하기 어렵습니다.
환경은 우리가 잘 보존해서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자산입니다.
만약 골프장을 마구 증설한다면 후세는 우리 세대를 일컬어 ‘경제를 핑계로 자연을 훼손한 어리석은 선조’로 손가락질 할 것입니다.
물론 집권여당 의원이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번 선언에 앞장선 이유는 ‘양심에 따라 소신정치를 하겠다’는 것이 저의 정치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민주화 운동을 하면서 감옥에 갔다 온 우리당의 많은 의원들이 언제부터 골프를 취미로 즐기고들 계신지 묻고 싶었습니다.
자신은 양담배를 피우면서 국산담배를 애용하라 한다면 모순이지요.
말과 실천이 일치하지 않은 것입니다.
정치인들이 ‘서민을 위한 정치’를 말하면서, 정작 자신은 골프장에서 즐기는 것은 모순입니다.
젊은 시절 이 땅의 노동자, 농민을 위해 청춘을 투신했던 헌신성이 자신을 험한 정치일선으로 나서게 했다면 철저히 민중의 기대와 요구에 충실해야 합니다.
가진자들 틈에서 갈등해서도 안 되고, 기득권자들과 타협해서도 안 됩니다.
묻고 싶습니다.
골프장에 가면 누가 비용을 내는지? 고급관료, 언론간부, 정치인들의 골프비용을 누가 내는지? 접대골프가 부메랑이 되어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오지는 않는지? 특히 우리당에 계신 존경하고 사랑하는 의원들이 순수성을 잃지 않기를 바라는 이유는 우리당 의원들의 변질은 우리 정치의 희망의 불씨가 꺼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면 동네에서 배드민턴 30분만 쳐도 땀이 팬티까지 젖고, 조기축구회에서 한 게임 신나게 뛰고 나면 스트레스를 확 풀 수 있습니다.
운동도 하고 민초들의 숨결도 느낄 있는데 꼭 건강을 위해 골프를 해야 하나요?
정치인은 골프를 쳐야만 폼이 나고 사교를 할 수 있다는, 그래서 정치를 하려면 골프를 쳐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구태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요?
정치에 입문한 후 처음으로 주도한 이번 서명을 마치면서 저는 새로운 교훈을 새삼 얻었습니다.
‘어느 누구 눈치도 보지 말고, 국민만을 바라보고 뚜벅 뚜벅 걸어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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