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정치인이 되겠습니다”

김 현 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4-11-30 20:01:25

{ILINK:1} 김지은이라는 여성이 있습니다.

청진의과대학에서 한의학을 전공하고 7년 정도 한의사로 활동하다가 더는 북한에서 살 수 없어 탈북한 여성입니다.

대한민국에 오면 다시는 배고프지 않고, 한의사 일만 하며 살 수 있으리라 꿈에 부풀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그녀에게 ‘의과대학 학력은 인정하지만 한의사 자격이나, 한의사 자격시험 응시 자격은 부여할 수 없다’는 날벼락같은 결정을 통보했습니다.

이는 지은씨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지은씨가 들려 준 탈북자들의 현실은 우리의 무관심과 준비 부족이 얼마나 중대한 사회문제로 비화될지, 마치 검은 구름이 밀려오는 것과 같았습니다.

겨우 5000여명이 입국했음에도 대부분이 실업자나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고, 아이들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채 배회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탈북자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던 사람들도 정작 이들이 한국 땅에 발을 디딘 후에는 이로써 모든 일이 다 끝났다는 듯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난 8월 김지은씨에게 한의사 시험 응시자격을 부여해달라는 청원을 국회에 소개한데 이어 10월4일 국무조정실 국정감사 때에는 지은씨를 참고인으로 출석시켜 탈북자정책에 대한 질의를 하였습니다.

지은씨는 전문가답게 차분하면서도 논리적인 답변으로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정부 관계자들과 의원들을 설복하였습니다.

그런 연유인지 얼마전 보건복지부는 지은씨에게 한의대 편입학을 제안해 왔습니다.

만약 지은씨가 한국 땅에서 한의사로서 일하게 된다면 제 의정활동의 첫 보람이 될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이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북한동포뿐 아니라, 우리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의 짐을 덜어주고, 이들의 생활에 힘이 되도록 정책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래서 상임위도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경제관련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를 선택했습니다. 은행, 증시, 보험 등 금융자본시장과 기업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다루는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담당하는 위원회입니다.

저는 그중에서도 일반 서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금융정책, 기업정책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평생 주식 한번 사보지 않았던 사람이 금융관련 상임위를 한다는 것은 마치 걸음마도 못하는 아이가 달리기를 하겠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어디나 길은 있듯, 용기만 가상했던 제게 금융관련업에 종사하는 친구들이 자청하여 개인교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용어 설명에서부터 상황 진단, 정부정책의 문제점, 앞으로의 방향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강의와 토론을 반복했습니다.

경제부 기자 중에서 과거 정당에 출입했던 분들과도 수시로 연락하며 기사 배경을 묻고, 판단을 공유했습니다. 언론 읽기도 정치기사에서 경제기사로 중심을 바꾸었고, 아예 경제지를 구독신청해서 출근길 자동차 안에서는 늘 경제신문 읽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이번 국정감사 때에는 국내은행에 대한 외국자본 진출이 심화됨에 따라 발생하고 있는 중소기업 대출축소와 회수강화가 초래하는 중소기업 자금난 해소책, 학자금 대출 연체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대책, 방카슈랑스 시행에 따른 보험 설계사 처우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습니다.

그중 학자금 대출 연체 문제는 청년실업 대책의 일환으로 이미 정부에서 대책을 시행하고 있음에도 대출받은 학생들이나 은행창구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맡은 또 하나의 상임위인 여성위원회 활동에서도 지향은 다르지 않습니다. 여성 중에서도 가장 고단한 여성인, 농어촌 여성들의 문제인 ‘농어촌지역의 보육정책’ 공청회로 첫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간 여성부와 농림부, 고령화와 미래사회위원회 등과 수차례 논의를 갖은 끝에 영유아보육법, 농어업인육성법, 농림어업인삶의질향상및농산어촌지역개발촉진에관한특별법, 농어촌주민의보건복지증진을위한특별법 등 4개 법안을 개정해서 대표발의 했습니다.

작지만 하나하나 변화의 가능성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지난 6개월은 그런대로 희망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국회 전체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과거진행형이라는 국민들의 평가를 벗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민들 삶과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낡은 정쟁으로 회의를 허송하고 돌아오는 밤 길은 오래도록 입 안이 쓰고 또 썼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후에는 매달 두어번씩 찾던 영화관에도 가본 일이 없고, 이런저런 예매를 위해 들락거리던 싸이트는 패스워드까지 희미해져버렸습니다.

일요일이면 아이들이랑 서점에 가서 책 고르던 일도, 농협매장에 가서 일주일 먹거리 장 보는 일도 빼먹기가 일쑤입니다.

밤늦게 퇴근한 저에게 아이들이 ‘엄마, 도대체 냉장고에 먹을 게 없다’며 투덜거립니다. 이 아이들에게 그래도 덜 미안한 엄마, 덜 부끄럽지 않은 정치인이 되는 것, 그것이 저를 밀어가는 힘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보다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기도하며 또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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