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장이 터진다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시민일보
| 2004-12-12 20:13:22
{ILINK:1} ‘각하’의 전속 이발사로 신망을 받고 있던 영화 속 ‘효자동 이발사’는 복장이 터진다.
그의 어린 아들(극중 나이 9세)이 중정에 끌려가 전기고문을 받고 불구가 되어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처지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철없는 어린 아이 조차 중정의 ‘간첩 조작’ 대상이 된다.
그런데 이발사 아들이 ‘남파 간첩’ 혐의를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너무 우습다.
아이의 죄명을 굳이 붙인다면 ‘설사를 한 죄’다.
그러나 관객은 이를 단지 영화 속 픽션으로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심정이 된다. 그것은 이‘이야기’들이 우리의 지난 실제 상황들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국보법이 서슬 퍼런 시절만 해도 ‘빨갱이’ 양산에 이바지한 혁혁한 공적은 가히 독보적 아닌가. 이로 인해 팔자에 없는 간첩이 되어 평생토록 ‘빨갱이’라는 주홍글씨에 시달려야 했던 사람은 또 얼마나 많았는가.
실제로 지난 93년 9월의 김은주 삼석씨 남매 간첩사건의 경우 “안기부 김 과장의 지시에 따라 일본에 가서 조총련 계열 관계자들과 만나 「북한 원전이나 필름 등을 한국에 갖고 들어가 김은주씨를 통해 한총련 쪽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다”며 자신이 안기부 프락치로서 조작했다는 백흥용씨의 충격적인 폭로가 있었다.
그에 따라 당시 진상조사를 맡았던 대한 변협측은 “그해(93년) 정기국회에 안기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내용의 안기부법 개정안이 상정돼 있어 안기부의 존재 의의를 알리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짐작된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었다.
이들 간첩 조작은 대부분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이뤄졌다.
예컨대 49년 국회프락치사건의 경우 48년 국가보안법 제정 당시 이를 반대한 소장의원들에 대한 괘씸죄로 인해, 58년 조봉암의 진보당 사건은 제3대 대선에서 200만표 이상을 득표하며 자유당에 도전세력으로 성장한 조봉암 제거를 위해 동원됐다는 점으로 볼 때 국가보안법이 정적 제거수단으로 활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다.
대선 또는 총선을 전후한 시기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각종 색깔론은 특정 지역 출마자들이 국회의원 자리를 거머쥐게 해주는 특급티켓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대단한 ‘빨갱이’ 전술의 위력에 대한 향수 때문인가.
17대 국회가 ‘간첩이 국회의원이 되어 암약하고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공세로 발칵 뒤집힌 것은.
민주화 보상이니 의문사 진상규명이니 과거사 규명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돼 있는 지금까지도 과거 국보법 망령에 매달려 있는 슬픈 군상들.
민생은 아랑곳 없고 오로지 당리당략만 존재할 뿐인 그들의 파렴치함에 국민들은 고작 복장만 쳐대고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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