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언제 오시려는가

공 선 옥 (소설가)

시민일보

| 2004-12-22 21:04:22

{ILINK:1} 동지다. 어린시절 이맘때, 그러니까 동지 죽 쒀먹던 때가 기억나기보다, 동지 죽 쒀먹던 날의 날씨가 떠오른다.

함박눈이 내렸었다. 마당에도 지붕에도 장독대에도 나뭇잎 위에도 소복소복 눈이 쌓였었다. 바로 그 모습, 온 세상에 난분분 눈 내리던 날, 그 날이 못견디게 그리운 나날이다.

눈이 안온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예전 같으면야, 이런 글 쓸 리가 없다. 꽁꽁 언 세밑, 오히려 날씨 추운 걸 걱정하며, 역시 없는 사람들은 날씨가 따뜻해야 한다는 말을 했으면 했지, 그리고 눈 많이 오는 걸 타박했으면 했지, 눈 안온다고 한숨쉬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월, 이월을 기다려 보긴 봐야 할 테지만, 그러나 어쩐지 불길하다. 한겨울에 찐빵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잘 팔리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한사코 두꺼운 외투를 입히려 들었더니 짜증을 부리는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봄에 피는 꽃들이 이 겨울에 때아니게 쏙쏙 피어나는걸 보면서, 나는 불길한 징후를 느낀다.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먹으며 싱글벙글이지만, 날씨가 따뜻해 아이가 집안에서 놀지 않고 밖에서 뛰노는 게 흐뭇하기도 하지만, 겨울에 피어난 꽃들이 영 보기 싫지만은 않지만 그러나 어느 순간, 착잡해진다, 공포스러워진다.

아, 올 겨울은 이대로 눈 한번 오지 않고 끝나버릴 것인가, 눈 없는 겨울에 대해 사람들은 왜 이렇게 아무렇지 않아할까, 겨울도 이제 막 시작한 셈이나 마찬가진데,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떠나, 그러나 어쩐지 느낌이 안 좋은 것은 사실이다. 항차, 눈 없는 겨울은 꽃 없는 봄, 비 없는 여름, 낙엽 없는 가을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그러면 사람들은 어찌 사나, 아니 살 수 있기나 한 것일까.

그래도, 그때 가서도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까, 눈 안 오는 겨울이어도, 꽃 없는 봄이어도, 비 없는 여름이어도, 낙엽 없는 가을이어도, 하늘이 파랗지 않아도, 바다에 고기 한 마리 살지 못해도 그래도 사람들은 돈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자전거 왕국이라 불리던 중국사람들이 이제 자전거를 버리고 자동차로 갈아타고 있다고 한다. 자동차 장사하는 사람들이야, 거대한 시장, 중국에 자동차 팔 궁리로 설렐 수는 있겠지만, 그 소식을 듣는 나는 또 예의 착잡해지고 공포스러워진다.

그렇잖아도 우리나라는 중국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많은데, 중국에 공장 많아지고 돈 많아지면 이제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찌 하나. 혹시 눈이 온다 하더라도 폭설이요, 비가 오더라도 폭우만 내려서 이제 우리나라 아이들은 고운 눈, 고운 비님이 내리신다는 옛 사람들의 말 따위는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년 같으면 지금 눈이 왔어도 몇 번은 왔을 이 즈음에, 마침 아르헨티나에서 전 세계 정부, 학계, 민간단체 대표들이 모여,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고 한다. 12년 동안이나 논의되어왔던,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교토의정서’가 내년 2월부터 발효되기는 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고 당연히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나라 미국이 빠져 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중국, 인도가 온실가스 우선 감축 대상국에서 빠져 있다고 하니, 그 얼마나 실질적인 효과가 날 수 있으랴, 싶어 그 또한 착잡하고 공포스러워진다.

화석연료를 쓰면 나오게 되는 물질인 이산화탄소, 메탄(어렸을 때 화장실에서 나온 메탄가스를 모아 밥을 해먹은 적이 있다), 이산화질소 같은 물질이 많아지면 그것이 바로 지구를 온실처럼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적응능력이 떨어지는 식물과 동물은 멸종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빙하가 녹고 홍수가 나고 한꺼번에 비가 왔으니, 또 가뭄이 이어지고, 극심한 더위가 몰려왔다가 극심한 추위가 또 질세라 몰려오고…

이런 지구의 ‘악화일로’를 누가 막을 수 있을까. 지금 나는 유독 눈이 오지 않는 이 겨울에, 문득,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함이 피부로 와 닿는 참이라 이런 글을 쓰고는 있지만, 글을 쓰면서도 내가 혹, 작금의 이 나라 현실에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글 쓰는 손이 자꾸 멈칫거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은 지구 온난화 문제야말로 인류공동의 운명에 관한 중차대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나라 정치인 중에 ‘인류공동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 이가 누가 있을까, 싶어서다. 국민의 이익을 대변해줘야 하는 의무가 있는 정치인들이 사실은 사적인 이익에 더 골몰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되는 현실에서 언감생심, 인류 공동의 문제라니.

우리나라보다 잘 사는 나라들도 외면하거나, 소극적으로 나오는 문제인데, 그렇잖아도 경제가 나쁘다고 아우성치는 와중에 어찌 그런 문제까지 신경 쓸 수 있겠느냐고 하는 정치인도 당연히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눈 안와서 우울한(사실 눈 많이 오면 또 많이 와서 우울할지도 모르지만) 이 겨울에 이런 글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역설적으로, 나라 안 문제조차도 작은 이익 가지고 이리저리 머리 굴리느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이 나라 정치 현실이 답답해서인지도 모른다. 진실로 ‘눈 안 오는 겨울’이 걱정되어서이기도 하지만, 인류 보편의 문제에 관심 돌리지는 못할망정, 나라 안 일이라도 제대로 처리 해달라는 내 방식의 주문인지도 모른다.
아, 눈은 언제 오시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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