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하얀 남자 김덕룡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4-12-23 20:16:06

{ILINK:1} 6.3대일굴욕외교반대-민주산악회·민추협결성-2.12선거혁명-통일민주당 창당-6월 시민항쟁-대통령직선제 쟁취-36년만의 군정종식과 문민정부출범-공직자재산공개 등 개혁추진-지방자치제 실현 등등.

소위 ‘머리가 하얀 남자’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는 김덕룡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우리나라 정치사에 남긴 족적은 이처럼 엄청나다.

물론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부독재의 기나긴 터널 속에서 4차례나 투옥된 것만 보더라도 그가 겪었을 숱한 고초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 때 필자가 그를 존경하며 따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형이 되어 버렸다. 필자는 더 이상 그를 존경하지도 따르지도 않는다.

필자가 변한 것이 아니라 그가 너무도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14년전인 1990년 ‘월간정치’ 2월호에 ‘국가보안법 개폐논쟁에 부쳐’라는 글을 기고한 일이 있다.

당시 그는 “정치탄압과 보복 수단으로 악용된 국보법은 폐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개폐논란의 대상이 되는 국가보안법은 유신시대 이래 특히 5공화국 아래서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정치탄압과 보복의 수단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악용됐다는 게 그 이유다.

또 국보법은 시대의식에 비추어서나 새 시대를 열어나가는 입법부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서도 폐지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이런 지적은 옳다.

특히 그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으로 악용되는 법률은 마땅히 개폐대상에 포함돼야 하는데, 국보법은 개폐대상의 이유로 지적된 이유의 모든 항목에 두루 해당되는 대표적인 악법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필자는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어떠한가.

자신이 스스로 ‘가장 혹독한 냉전구조의 유산’이라고 비난하던 그 국보법을 사수하기 위해 한나라당의 선봉장으로 나서고 있지 아니한가.

그는 당시에 국보법 폐지를 반대하는 김종필 총재를 향해 “시대의 흐름인 냉전종식과 민족화해를 우리가 먼저 솔선할 수는 정녕 없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제는 필자가 그와 똑같은 질문을 김 대표에게 던지고자 한다.

“한나라당은 냉전종식과 민족화해를 위해 국보법을 폐지할 의사는 없는 것인가.”

“지금도 국보법만이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는가.”

어떤 답변을 내놓든 스스로 생각해도 쑥스러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쑥스러움은 잠깐이다. 이는 우리나라 미래가 달린 일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김 대표는 예전의 그 냉철함을 되찾고, 냉전구조의 유산인 국보법 철폐에 앞장서 주기를 바란다.

‘머리가 하얀 남자’에 대한 좋은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한 언론인의 간곡한 바람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