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폐지, 5일 남았다
편집국장 고 하 승
시민일보
| 2004-12-26 20:38:58
{ILINK:1}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여권 핵심인사들과 함께한 송년 만찬자리에서 국가보안법 등 ‘4대 개혁입법’과 관련 “여유를 갖고 천천히 가자”고 발언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만하다.
더구나 과반의석을 가진 열린우리당마저 ‘국가보안법 연내 폐지’ 라는 기존의 당론을 사실상 철회하고 말았으니, 어찌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동안 의석수가 적어 개혁을 못한다던 노 대통령과 여당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국민들은 지난 총선에서 40여석에 불과한 미니여당을 과반수 의석의 거대여당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랬더니, 이제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수구세력과의 합의’란 말인가. 불과 몇 달 전 “국가보안법은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며 국가보안법 논쟁에 불을 붙인 사람은 다름 아닌 노 대통령 자신이다.
그렇다면 이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노 대통령과의 만찬 이후 자신들이 정한 당론을 다시 검토하자며 우왕좌왕 하는 여당의 모습이다.
현재 여당에는 당 지도부를 비롯, 상당수의 의원들이 과거 군사독제 시절 민주화 운동에 몸담았던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이다.
그런데 어찌 이들이 수구세력과 야합하여 시대착오적 악법의 수명을 연장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단 말인가.
노 대통령의 “천천히” 발언은 현재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국회 앞에서 목숨을 건 무기한 단식을 벌이고 있는 1000여명의 농성단을 유린하는 행위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그들은 지금 이 추운 겨울에도 아스팔트 위에서 사상초유의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연말까지는 불과 5일 남았다.
열린우리당이 명분 없는 ‘4자회담’에 매달리며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여야 협상도 정도가 있고 상식이라는 기본선이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그것은 야합에 불과하다. 경고하거니와 국민들은 야합을 하라고 지난 총선에서 여당에 표를 몰아 준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과 여당이 끝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이대로 시간만 흘려보낸다면, 국민들은 다음 선거에서 분명히 그에 대해 준엄한 심판을 가할 것이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2006년의 지방선거 등 줄줄이 선거가 이어진다. 그 때가서 뒤늦게 땅을 치고 통곡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정녕 이대로 막을 내리는 시한부 정당이 되지 않으려면 여당은 남은 시간 국보법 폐지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인권의 억압과 냉전의 굴레를 벗어나 진정한 민주개혁과 화해·협력의 시대로 나가기 위해서라도 국보법 폐지는 필연적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여당은 대체입법안이니 개정안이니 하며 우왕좌왕 할 때가 아님을 분명하게 인식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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