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당 과반 17대 달라진 것은?
손 혁 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시민일보
| 2005-01-04 20:54:16
{ILINK:1} 17대 국회에 대해 국민들은 많은 기대를 걸었다. 또 국회의원과 정당 스스로 국민에게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5.3협약’을 맺기도 했다. 그러나 바른 정치를 다짐했던 17대 국회는 국민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17대 총선에서 드러난 유권자의 표심은 낡은 정치의 청산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였다. 그 결과 ‘의회권력의 교체’가 이뤄졌다. 의회권력을 독점해왔던 보수 세력이 위축되어 헌정사상 처음으로 온건 자유주의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했다. 권위주의적 권력에 의해 정치적 탄압을 받았던 진보정당이 43년 만에 원내에 진출했다. 남성 중심의 정치구조에 균열이 일어나 정치적 약자였던 여성의 의회진출이 확대되었다.
두 야당에서는 여성지도자가 당의 얼굴이 되었다. 한국정치를 썩게 만들었던 돈선거도 많이 사라졌다. 국민들은 17대 국회가 파행적으로 움직여가던 한국정치의 정상화를 향한 첫걸음으로 기록되기를 원했다.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어 거센 비난을 받았던 16대 국회는 역대 어느 국회보다도 권능이 강했던 국회였다. 오랫동안 한국 정치에서 의회는 정치의 변두리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던 국회의 위상이 높아지고 독재자에 의해 박탈당했던 권한을 되찾은 것은 바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많은 국민의 힘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힘을 16대 국회는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엉뚱한 데에 써먹었다. 일일이 다 들춰낼 필요도 없다. 불법행위를 저지른 의원들을 지키기 위해 수없이 많은 방탄국회를 열었고, 체포동의안을 모조리 부결시켰던 것이 바로 16대 국회이다. 심지어는 구속되어 있는 의원의 석방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이른바 ‘교도소 습격사건’도 마다하지 않았던 국회이다. 검찰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무리하게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소추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민을 무시하고 국정운영을 뒤엉키게 만든 국회에 대해 국민은 17대 총선에서 엄정한 심판을 내렸다. 16대 국회의원 309명(재·보궐선거 당선자 포함) 가운데 17대 총선 당선자는 76명(27.3%)에 지나지 않았다. 16대 국회의 초선의원은 111명이었는데 17대 국회의 초선의원은 187명이다. 또 전체 당선자 가운데 50대 이하가 250명(83.6%)으로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가 대폭적인 물갈이로 나타난 것이다.
또한 17대 총선은 국회의 대의성을 확대시켜 주었다. 그런데 17대 국회에서는 39명의 여성 당선자, 10명의 민주노동당 당선자 등 지금까지 소외되어왔던 여성, 노동자, 장애우, 농민 등 정치적 소수자의 대변자가 입성했다. 따라서 한국정치의 대의성 부족현상이 상당히 완화되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대는 17대 국회 처음부터 깨져버렸다. 16대 국회와는 달리 법정개원일을 지키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처음 한 일은 선거법을 위반한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부결시킨 것이었다. 국회를 공전시키는 모습도 여전했다.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는 색깔론으로 얼룩졌고, 첫 정기국회는 예산안을 법정기일 안에 처리하지 못했다. 면책특권을 악용한 ‘아니면 말고’ 식의 근거 없는 흑색선전과 폭로정치도 여전했다. 낡은 모습을 떨쳐버리고 ‘일하는 국회’와 ‘생산적인 국회’가 되겠다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상대당을 정치의 파트너로 여기지 않고 때려잡아야 할 적군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여야는 사사건건 날카롭게 맞부딪쳤다. 여야가 맞부딪치는 최전방이 국회가 되어버리는 바람에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요, 국정운영의 중심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17대 국회가 아직까지는 낡은 정치행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7대 국회의 첫 해 활동을 돌이켜보면 정치개혁·국회개혁을 시급하게 추진해야 함이 드러났다. 16대 국회 막바지인 2004년 3월에도 상당한 정도의 개혁이 이뤄졌지만 아직도 남은 과제가 있다. 본질적인 정치개혁의 과제가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준법서약서를 없애고 양심수를 전면 석방하는 일, 국가보안법을 없애고 조작간첩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일,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을 철저하게 막는 일, 국민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집시법을 바로잡는 일, 정기간행물법을 고쳐서 언론개혁의 틀을 만드는 일 등이 선거법·정당법·국회법·정치자금법의 개정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개혁과제이다.
지금까지의 정치가 갈등과 대립의 정치였다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은 화합과 조화의 정치가 되어야 한다. 국민을 평소에는 소외시키고 배제시켰다가 필요할 때만 동원했던 동원의 정치에서 자율과 자치를 기준으로 국민이 최대한 참여할 수 있는 참여의 정치로 바꾸어야 한다. 밀실에서 패거리들이 움직이던 닫힌 정치를 광장에서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열린 정치로 바꿔야 한다. 돈과 지역감정 등 비합리적 요인들이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깨끗한 정치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핵심이다.
17대 국회의 정치사적 의미는 매우 크다. 그러나 의미가 크다고 해서 17대 국회가 모범의회가 되는 것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정상국회의 출범과 올바른 의정활동은 서로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17대 국회가 이제 겨우 첫 단추를 뀄다는 점이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를 다시 제대로 끼우면 된다. 한국정치의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17대 국회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제발 17대 국회가 저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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