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우리당과 실사구시
김 영 춘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2-15 19:19:40
{ILINK:1} 2월에 접어들면서 우리당의 전당대회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내게도 지도부 선거에 출마할 것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사실 나의 관심사는 자신의 출마 여부보다는 다른 데 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의 정체성이 얼마만큼 구체화되고 확립될 수 있겠는가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열린우리당 구성원들의 출신과 성향이 비교적 다양한 것은 사실이다. 작년에 유시민의원이 잘 지적한 대로 우리당은 출범 당시 거대한 기성정당들에 대항하는 ‘선거연합’의 성격을 띠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연합’의 최소 강령은 오히려 분명하다. 나라의 운명을 좀먹고 그 스스로 권력화된 지역주의정치의 폐단을 혁파하고, 나아가 개혁과 발전, 통합의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였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입당과 함께 우리당은 여당으로서 정부의 성공적인 국정운영을 뒷받침해야할 책무까지 떠맡게 되었다.
다소 추상적이긴 하지만 현 시기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출발선을 재확인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바탕 위에서 논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당 내에서 적어도 두 개의 경향은 배격되어야 한다.
그 첫째는 개혁에 대한 패배주의적, 청산적 경향이요, 둘째로는 근본주의적 급진론이다. 누구를 탓하기보다 이 같은 좌, 우경적 오류들은 정치생활을 하면서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함정들이기에 우리 스스로 다짐하고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노선은 수구파들이 주장하듯이 무슨 한풀이를 위한 것이 아니며 이 무한경쟁시대, 어려운 기로에 놓인 국가의 생존과 발전을 위한 전략이다. 집권여당으로서 이러한 개혁노선을 혁명적 상황도 아닌 일상적 현실 속에서 관철시켜간다는 것은 엄청난 장애와 시련을 스스로 자초하는 셈이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는 외통수이기에 우리의 개혁 추진은 전략적 스케일과 치밀함을 지녀야 하고 집요해야 하며, 사회적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자면 개혁의 추진자들이 좌, 우의 편향에 휩쓸리지 않는 균형감각과 실사구시적 태도를 철저히 견지해야만 한다.
실사구시가 미국식 실용주의와 곧바로 등치되는 말은 아니다. 내게도 실용주의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도 존재한다. ‘경제 올인’같은 용어에 대해서도 주의해야 한다. 우리는 개혁을 통한 발전을 창당의 명분으로 내세웠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러므로 상당한 기간동안 이는 후퇴할 수 없는 기본노선인 셈이다. 남은 숙제는 우리가 얼마나 실사구시적으로 개혁을 도모하고 발전을 이루어내는가 하는 것이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다음 기회에 논하기로 하고, 여기서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보안법문제를 부담스러워해서 차제에 털고 넘어가자는 경향이 당내에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19세기 초 영국의 노예무역 폐지는 윌버포스와 같은 정치인들의 수십년에 걸친 불퇴전의 투쟁과 인내의 산물이었다. 보안법 폐지는 노예제 폐지처럼 인내심을 갖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노력해야 할 과제이지 어정쩡하게 유기(遺棄), 청산해버릴 문제는 아니었다.
또 하나의 우려스러운 경향은 근본주의적 태도이다. 이상(理想)이 없는 정치도 끔찍하거니와 과도한 이상에 사로잡힌 정치도 재앙이다. 20세기 공산주의 실험의 실패가 그 대표적인 실례일 것이다. 많은 중도적 국민들이 우리당에 대해 불안해 하는 것도 바로 현실을 지나치게 뛰어넘는 무리한 이상주의의 화신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야당과의 협상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 그 결과와 후유증이 어떻든 지금 당장 끝장을 내지 않으면 반개혁이라는 태도 등은 조급한 근본주의의 전형이다. 그것이 재야운동이나 시민운동의 차원에서 제기하는 것이라면 일면 수긍할 수 있지만 정치의 영역에서, 더욱이 집권 여당 내부에서 제기된 주장들이라면 수긍하기가 어렵다.
작년말의 보안법 처리 유예 결정은 그나마 야당과의 어설픈 타협 혹은 밀어붙이기로 일관했을 경우, 보다 심각한 분열로 치달을 수 있었던 당의 내홍을 봉합하는 효과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의 수구적인 태도를 폭로하고 우리당의 대화 추구와 파국방지 노력을 부각시키는 효과도 거두었다. 그 당장에는 승자처럼 굴었던 한나라당이 지지도 추락과 함께 불과 한달 만에 자성과 내분으로 치닫는 반전을 목도하지 않았던가?
결론적으로 우리당이 추구해 나갈 바는 개혁과 국가발전에 대한 비전과 의지를, 국민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과 절차에 따라 추진해 가는 것이다. 무엇이 개혁이고 무엇이 발전인가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분명 필요한 일이고, 전당대회는 그 논쟁의 결정판이어야 한다.
어떤 후보들이 지도부 선거에 나서든 이같은 논쟁점들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갖고 나서라. 그 입장으로 대의원들을 설득하고 표를 구하라. 그러면서도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당선된 후 그 차이의 융화를 위해 노력하겠노라고 약속하라. 그러면 우리당의 4·2 전당대회는 이 나라를 책임지고 있는 경세(經世)의 집권당으로서 국민들 속에 신뢰와 헤게모니를 튼튼히 뿌리내리는 멋진 축제의 한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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