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전당대회의 핵심과제

임 종 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2-20 20:46:49

{ILINK:1} 작년 연말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개혁법안과 민생법안의 연내 처리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평당원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국회 밖에서 농성과 단식을 했고, 나를 포함한 개혁성향 의원들은 11일 동안 시멘트 바닥에서 잠자며 국회 안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했다.

결국 한나라당의 거센 반대를 극복하지 못하고 언론관계법과 재래시장육성법 등 극히 일부 법안만 통과시키는 데 그쳤지만, 우리의 목표가 이것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다. 251회 임시회를 마감하면서 우리는 나머지 개혁법안은 ‘05년 2월 임시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암묵적인 합의를 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새로운 지도부가 구성되면서 우리 당의 기조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목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경제살리기와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만 당을 뒤덮고 있다. 2월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개혁입법 처리에 관한 논의와 방침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최근 우리 당의 주요 담론은 실용주의, 여당역할론, 지지세력확대론, 차기집권론 등 정치공학적인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 있어, 총선민의를 따르는 것이 최대의 정치공학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실용주의는 총선 직후인 4월말 설악산에서 열린 당선자 워크숍에서도 제기된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총선민의는 ‘개혁’이라며 실용주의를 강력히 비판했는데, 죽은 줄 알았던 실용주의가 이 중요한 순간에 되살아나는 이유를 나는 이해할 수 없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실용주의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실용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도 굳이 실용주의를 말하는 것은 당론의 후퇴를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우리 당은 실용주의라는 망령에서 벗어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총선민의를 따라야 한다.

여기서 4.15 총선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상기해 보자. 4.15 총선은 한국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정부수립 이래 처음으로 개혁세력, 즉 민주인권세력, 평화통일세력, 독립운동세력이 국회의 과반수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47석에 불과하던 열린우리당을 152석 과반수여당으로 만들어 준 국민의 뜻은 무엇인가? 나는 변화와 개혁이라고 본다. 썩고 싸움만 하는 정치를 개혁하라는 것, 우리 사회에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스템이 작동되도록 해달라는 것, 서민과 약자들도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작년 연말 우리 당은 개혁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연말에 개혁법안을 처리하지 못했으면 2월 임시회에서 처리할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데도 당 지도부는 이를 중점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모양이다.


나라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은 경제살리기를 강조할 수 있다. 그러나, 변화와 개혁을 내세우고 국민의 심판을 받은 우리 당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당은 개혁입법과 경제살리기가 상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개혁을 통해 우리 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경제도 살고 분배도 개선될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야 한다.

경제살리기는 따뜻한 밥과 맛있는 반찬이고, 국가보안법 폐지 등 개혁입법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다. 아무리 맛있는 밥과 반찬을 배불리 먹는다 하더라도 더러운 공기와 물을 마시며 잘 살 수는 없다. 우리 당은 개혁과 민생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열린우리당에는 개혁적인 당원들과 의원들이 많이 참여하고 있는데도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부의 구성이 당원들의 이념성향이나 의사분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당이 온건보수와 중도세력, 온건진보세력이 공존하는 정당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지도부에는 개혁에 적극적인 진보세력의 입장을 대변해줄 사람이 딱히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다.

2월22일자 시사저널(800호)은 당원협의회장들의 성향을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열린우리당은 중도좌파라고 규정했다. 협의회장들의 이념성향이 평균 3.6점으로 중도좌파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들은 개혁입법 처리에도 적극적이어서 51.3%가 ‘국가보안법은 2월 임시국회에서 당론대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협의회장들이 전체 당원들의 성향과 100%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으나 당원들의 경향성을 알려주는 하나의 지표임에는 틀림이 없다. 따라서 당내 진보세력, 적극적인 개혁세력의 목소리는 지도부에도 충분히 반영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4.2 전당대회는 지금까지 보여왔던 평당원과 지도부간의 의사분포 불일치를 시정할 좋은 기회다. 개혁에 적극적인 진보성향의 당원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사람이 지도부에 가능한 한 많이 선출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흔들리지 않고 일관되게 개혁과 진보의 입장을 견지해 온 인물이 5명의 상임중앙위원 중 과반수인 최소한 3명은 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변화와 개혁을 바라는 당원들이 4.2 전당대회에서 성취해야 할 목표이자 과제라고 생각한다.

4.15총선과 작년 연말 개혁입법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능동적이고 창조적이며 헌신적인 우리 당 당원들의 역량으로 보아 이 정도 목표는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활발한 토론을 통해 최선의 방안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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