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명동촌을 생각함
정 청 래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3-08 18:58:35
{ILINK:1} 지금 전 국민의 적으로 고려대 한모 교수가 단연 톱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조선 지배는 축복”이라는 노교수의 망언은 술기운에 한 실언이 아닌가 봅니다.
1988년 가을 어느날 안기부에 끌려가 이름 모를 낯선 호텔방에서 3시간 동안 팬티바람으로 눈이 감긴 상태에서 두들겨 맞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독재의 하수인인 이들이 그러더군요
“너희 같은 빨갱이들을 잡는 것이 애국이다”라고 말입니다. 확신범 인거지요. 이 자들처럼 이 노교수도 아직도 일제에 아부하고 그 의리(?)를 지키는 것이 애국이라고 착각을 하고는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이 교수의 논문을 조금 읽다가 눈이 오염될 것 같아서 그만두었습니다.
얼마 전 다까노 도시유키 주한 일본국 대사가 서울 한복판에서 가진 외신기자회견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다”라는 망언을 해서 제가 속한 문화관광위에서 이를 규탄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이 결의문의 제목이 ‘주한 일본국 대사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이라고 밋밋하게 간다길래 한 손을 번쩍 들고 “제목은 내용을 대표하는 상징물인데 주장이라니요? 망언으로 갑시다.”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제목에 분명히 망언으로 교정되었습니다.
망언이지요. 그런데 일본국 사람도 아닌데 사학 명문 민족고대라 칭해지는 진리의 전당에서 평생 밥 벌어 먹은 교수가 일본의 식민 지배를 축복이라니요? MBC뉴스데스크 엄기영 앵커의 말처럼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우리가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광복은 되었으되 그것은 법적으로 된 것이고 아직도 친일의 잔재와 망령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945년 부민관 의거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 조문기선생님(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3.1절 행사와 광복절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아직도 친일파들이 판을 치고 정신적으로 독립되지 않았는데 무슨 기념식이냐는 거지요.
얼마전 3.1절날 독립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2년 전 “조선일보 친일윤전기를 철거하라”며 대형 크레인을 동원해 눈에 띄는 시위를 하던 생각이 마구 나더군요.
이번에는 공식 초청을 받아 겨레의 집에서 거행된 기념식에 참석을 했습니다.(조문기 선생님이 혼찌검을 내실까?) 이때를 계기로 독립기념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독립기념관의 소관 부처도 저희 문광위라서 친일기념관과 통일 기념관 설치에 정책 질의도 여러 차례 한 적이 있습니다. 2년 전과는 달리 하얀 목장갑도 주고 가위도 주며 명동촌 개관 기념 테이프 커팅을 하라고도 하더군요.
이날 독립정신의 진원지 북간도 명동촌에 대한 전시를 처음 시작했는데 우리가 그동안 소홀했던 명동촌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족 지도자 김하규 선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명동학교와 명동교회에 대한 여러 전시물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문성근님의 아버지 문익환 목사님의 아버지 문재린 목사님의 부인이 김하규 선생님의 따님인 김신묵 선생님임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분들은 그곳 명동촌에 학교를 세우고 한글과 민족정신을 교육하고 그곳에서 문익환 목사님의 친구, 민족 저항시인 윤동주의 서시도 탄생했더군요. 1999년 중국 연길 용정중학교에 갔을 때 교정에 윤동주 시비가 보무도 당당하게 서있었는데 그곳에 곧게 새겨진 서시를 마음속으로 외웠답니다.
기념식을 마치고 독립 기념관 정문 앞에서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환수를 위한 특별법 제정 촉구 100만인 서명 운동에 참여 했습니다.
경쾌한 광복군가에 맞춰 몸을 흔들며 서명을 받는데 많은 분들이 호응을 해주시더군요. 오늘은 서울 명동 한복판에서 ‘국민의 힘’ 회원들과 1시간가량 서명을 받았습니다.
알록달록 지나가는 시민들을 상대로 “친일파의 재산은 국고에 환수되어야 합니다”, “매국노들이 나라 팔아 모은 재산은 국고에 환수되어야 합니다” 핸드 마이크를 들고 외치는데 가족 나들이를 나온 아빠가 “어린 아이도 해도 되나요?”라고 묻더군요. “당연하지요. 이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나라를 물려주자는 것인데요.” 그러자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다가와 서명을 하더군요.
명동을 빠져 나오면서 갑자기 2002년 12월 18일 오후 5시 쯤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마지막 유세 때의 장면이 떠올려 지더군요.
이 명동 유세에서 정몽준 후보가 사고를 결심했다고도 하고, 가수 김모씨가 연단에 오르려 안간힘을 쓰던 그 장면도 스쳐 지나가고, 오늘 이름도 같은 서울 명동에서 며칠 전 독립 기념관에서 전시를 시작한 100년 전의 북간도 명동촌의 빛 바랜 사진들도 생각나고, 그때의 명동촌의 독립정신이 아직도 올곧게 이 곳 명동에서 실현되지 못하고 오늘도 친일의 바람이 스치우는 거리를 걸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나라를 팔아먹은 대가로 재산을 모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할아버지의 후손들은 그 땅이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땅 찾기 소송을 한다고 합니다.
일본 놈들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웃지 못할 일과 어쩌면 그리도 닮은꼴일까요? 어느 교수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축복이라고 하지를 않나. 이들 친일파 후손들이 찾을 땅은 무려 430만평이라고 합니다. 여의도 면적의 거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재산입니다.
열린 우리당 이종걸 의원의 할아버지 이회영선생은 지금으로 따지면 시가 600억원 정도의 땅을 팔아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갔답니다.
이 돈으로 일본에 대항해 무장투쟁을 하기 위한 신흥무관학교를 세웠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도 있는데 매국의 대가로 받은 땅을 되찾겠다니 이 들의 후한무치한 행동을 특별법 제정으로 물리쳐야 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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