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 이전에 국민신뢰 회복해야
고 흥 길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3-22 19:51:01
{ILINK:1} 최근 들어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 정치관련 3법에 대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현재 거론되는 내용들을 살펴보면 법인 후원금 제도의 부활과 모금액 한도 증액, 후원금 모집 행사 허용 등 정치자금에 관한 것과, 지구당과 유사한 지역 조직 허용 등 3개 정치관계법의 개정 전 상황과 거의 다를 바가 없다. 정치관계법을 개정한 지 채 1년밖에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논의들이 나오는 그 자체만으로도 국민들의 비난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해 개정된 정치관계법은 개정 당시에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으며, 시행 1년여 동안에도 많은 의원들이 신문지상이나 각종 토론회를 통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해 왔다. 제대로 된 정치활동을 하기에는 정치자금 한도액이 너무 부족하다는 의견과 소액다수의 자발적인 후원이 아직 정착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의 사유로는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주장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후원회를 운영하고 있고, 개정된 법 테두리 안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려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하겠다. 후원금 받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후원금에 관한 선관위 보고절차도 만만치 않아서 후원금을 낸 사람들에게 감사인사와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신상정보까지 물어봐야 하니 가끔씩은 난감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단지 활동이 어렵고 불편하다고 해서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지난 17대 총선 직전, 정치관계법을 대폭 개정한 것은 부정부패를 추방하고 낡은 정치적 관행들을 혁파하고자 하는 자기반성의 일환이었고, 이를 실천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한다면 개정이 정치권 스스로의 자기반성이라기보다는 국민정서와 여론에 떠밀려 마지못해 이뤄진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장 선거가 눈 앞에 와 있으니 일단은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급급해 여야 모두가 깨끗함과 투명함을 내세우며 강도 높은 개정을 외치던 것이 사실이다.
설사 법개정이 여론에 밀려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계속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면 정말 자기반성이라 할 수 있고, 투명하고 깨끗한 의정활동에 대한 의지가 있는 것이라고 국민들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은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데 반해 그렇게도 개혁을 외치던 여당이 과거회귀를 말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말이 좋아서 비현실적인 법률을 현실적으로 고치자는 것이지, 실상은 법인 후원금 제도와 후원회 행사를 부활시키고 여당의 프리미엄을 통해 막대한 정치자금을 손에 쥐고 싶다는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지난 선거에서 여당이 보여준 모습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투명함과 개혁을 외쳤던 대국민 사기극이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당장 눈 앞의 자기편의만 생각하고 정작 신경써야할 국민정서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시하는 태도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면 선거가 아직도 3년이나 남았으니 그때쯤이면 국민들이 다 잊어버릴 것이라는 착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현행 정치관계법들이 일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많은 의원들이 공감하고 있는 바이며, 언젠가는 개정되어야 한다는 데에도 다수의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그 시점은 아닌 것 같다. 여당의 주장대로 재개정한다면 의정활동 환경이 지금보다 개선되는 점이 없지는 않겠지만, 정치권은 약간의 편익을 누리는 대신 그나마 얼마 남지도 않은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정치관계법의 개정이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미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여야를 떠나 심각한 상태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나타났던 수많은 비리와 부정부패 사건들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실정에서 정치관계법들을 개정해 과거로 되돌리자고 한다면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현행법으로 인해 의정활동에 불편함은 있을지 몰라도 의정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좀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열심히 해서 정말 깨끗하고 투명하게 정치자금을 관리하고 적법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정치인들이 함부로 부정을 저지를 수 없는 풍토를 정착시킨 후에나 시간을 두고 법개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한나라당 정개특위에서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규정한 정치자금 규모와 조달방법을 수정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낸 바 있다. 이와 함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서는 수뢰자와 공여자 모두에게 50배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입법도 추진할 예정이다. 또한 대국민클린협약을 체결해 부정부패나 직위를 남용한 축재가 드러날 경우 의원직을 사퇴하도록 하고, 직무와 관련된 주식의 백지신탁제도 조속히 도입하도록 노력할 것이다.
여당은 지금이라도 부적절한 정치자금법 개정 시도를 그만두고 한나라당의 정치자금 투명화 노력에 동참해 국민신뢰를 회복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러한 노력과 의지를 보여 줄 때 정치권 전체가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돼 우리 모두의 염원인 깨끗한 정치, 투명한 정치가 뿌리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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