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도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김 태 년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4-12 20:45:49
{ILINK:1} 북녘땅을 다녀왔습니다.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에서 주최한 금강산 슬기넘이 고개 나무심기에 참석했습니다.
동료의원 네분과 석탄공사를 비롯한 공기업관계자, 민간자원봉사자 등 100여분이 함께 했습니다.
아침에 출발한 버스는 새로 개통한 육로길을 따라 오후 늦게 금강산 호텔에 우리를 내려 놓았습니다.
개성공단은 두 차례 방문했지만 금강산은 초행길이었습니다.
북측 군사분계선에서 검문하러 올라온 북한 경비병의 무뚝뚝한 표정은 개성공단길의 검문병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경례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북녘 인민이 아니어서 그렇다는 가이드(북녘에서는 외래어를 쓰지 않기 때문에 조장으로 불러달라고 합니다. 황 조장...)의 설명입니다.
비무장지대 오른쪽으로 펼쳐진 우리의 동해바다는 역시 아름다웠습니다.
강원도대에서 10년간 근무한 적이 있는 박판영 사학연금관리공단 이사장님께서 동해바다는 수온이 차가워 한여름에도 시원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래서 동해바다 해수욕은 물에서 하는 게 아니라 백사장에서 한다고 합니다. 한여름에 동해바다에서 해수욕을 해본 경험이 없어 잘 모르겠습니다.
더운물이 나서 온정리라는 금강산 관광특구는 남한과 북한이 철물벽을 경계로 공존하고 있습니다.
현대아산이 북한당국으로부터 임차한 땅에 지어진 온정각 등 현대식 건물과 원래 있었던 온정리 낡은 살림집의 공존이 기이합니다.
바로 앞으로 지나가는 북녘의 동포와 따뜻한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맘 간절합니다.
하지만 북한당국에서 허가한 북녘의 산림보호원이나 봉사원외에 일반 동포에게는 일절 말을 걸지 말라는 가이드의 신신당부가 있었던 터라 엄두를 내지 못하겠습니다.
온정리 일반 마을로 들어가는 모든 길목에선 북한 경비병이 부동자세로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빨간 깃발을 하나씩 들고 있습니다.
다음날 호텔식당에서 대충 아침 해결하고 슬기넘이 고개에서 나무를 심었습니다.
잣나무 천여 그루였는데 100여 명이 달라붙어 심으니 한 시간여 만에 끝나버립니다.
한 그루라도 더 심을 욕심에 부지런히 삽질하고 묘목심고, 비료주고...
남들보다는 더 많이 심은 것 같습니다.
개성의 산들은 나무하나 구경할 수 없는 민둥산이었는데, 금강산은 민족의 명산으로 관리되었는지 돌산임에도 제법 산림이 무성합니다.
슬기넘이 고개는 2002년 산불로 인해 잡목만 셀 수 있을 만큼 자라 있었습니다.
다음달이면 새로 태어날 셋째아기와 함께 심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개인적으론 셋째아기 출산 기념식수가 되어버렸습니다.
10년 후에 건강하게 자란 셋째아이 손잡고 슬기넘이 고개 다시 찾아 “아빠가 심은, 너와 나이와 같은 나무란다” 이렇게 얘기해 주고 싶습니다.
물론 그때는 마치 외국 나가듯이 남쪽 출입국사무소 거치고 북측 출입국 사무소 거치치 않아도 되는 그런 시대가 되어 있겠지요.
온정리 마을안까지 들어가 연탄 기증식을 했습니다.
이례적으로 50여명이 마을 안에 들어 갈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25톤 트럭 7대분의 연탄을 기증했습니다.
지금까지 13차례에 걸쳐 연탄을 배달해 주었으니 꽤 많은 양입니다.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관계자들의 동포 사랑이 눈물겹습니다.
아궁이부터 개조해야 한다니 참 먼 길입니다만, 온정리부터 시작해서 고성군 전역, 더 나아가 강원도 아니 북녘땅 전역으로 확대된다면 벌목으로 겨우 한기를 모면하는 북녘동포들도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을 겁니다.
푸르른 산림도 유지 할 수 있을 거구요.
30년 후에는 북녘의 산들도 남녘땅처럼 울창한 산림으로 푸르렀으면 좋겠습니다.
방과 후 마을로 돌아온 아이들이 살림집 담벼락 뒤에 숨어 우리 일행을 몰래 훔쳐봅니다.
우리 일행이 있는 곳으로 뛰어나와 손도 잡고, 얘기도 나누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금강산엔 아직 녹지 않은 눈들이 덮여 있어 희끗희끗합니다.
온정리 앞마당엔 개나리 한 그루가 노란 꽃망울을 활짝 피어냈습니다.
눈 덮인 겨울이 있지만 봄은 시나브로 오고 있습니다.
어려운 북녘땅에도 봄이 오듯이 함께 잘사는 그런 시절이 올거라는 믿음을 갖습니다.
출발전에 짬내서 한 금강산 온천은 1박2일의 피곤함을 다 씻어냅니다.
금강산 흑돼지 보쌈에 북한 막걸리 한잔도 아주 좋았습니다.
메뉴판의 이채로운 용어 북측 흑돼지, 북측 막걸리, 남측 소주, 북측 소주...
남한, 북한으로 쓸 수 없고, 남조선 북조선으로 쓸 수 없는 남북회담 용어 같은 남측, 북측이 낯설었습니다. 차라리 남녘, 북녘 이렇게라도 쓴다면 훨씬 정겨울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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