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주권, 문화다양성협약’

정 병 국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4-13 21:05:41

{ILINK:1} 시장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사라져야 할 문화는 단 하나도 없다. 문화를 잃는다는 것은 한 공동체의 언어와 영혼을 잃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문화는 기본적으로 공동체나 국가, 민족의 사상과 삶의 궤적을 표현하는 의사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산업은 성장하고, 경쟁력이 없는 산업은 도태되어야 한다는 시장의 논리가 문화예술 분야에까지 적용된다면, 다양성은 파괴되고 인류문화는 획일화라는 대재앙을 맞이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국제적인 ‘문화다양성 협약’이야말로 ‘문화의 획일화’라는 재앙을 막아내고, 서로 다른 문화가 공존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유네스코는 2001년 ‘문화다양성 선언서’를 채택하였고, 2002년 UN은 5월21일을 ‘세계문화다양성의 날’로 지정하였다. 이어 2003년 유네스코는 이사회를 통해 ‘문화다양성 협약’을 제안하였으며, 총회 의결을 거쳐 2004년 7월15일 ‘문화콘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를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협약’)’의 초안을 발표하였고, 정부 간 논의를 거쳐 올 10월에 제33차 유네스코 총회를 통해 채택될 예정이다.

이는 문화협약의 중요성을 인식한 우리 나라의 NGO인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뿐 아니라, 많은 세계 예술인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 등 일부 국가(일본, 호주 등)에서는 자신들의 문화상품 수출을 위해, 국제 통상협정에서 문화적 예외를 인정하려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내용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만약 올 해 유네스코 총회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이 채택되지 않거나, 내용이 완화된다면 세계의 각국은 자국의 문화다양성 확보에 비상이 걸릴 것이며, 우리의 스크린쿼터 유지도 어려워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구화 시대에 주권국가의 문화정책을 보호해주는 국제법적 강제력을 갖는 ‘문화다양성협약’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세계 각국이 자국 문화를 지켜나가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정책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문을 걸어 잠그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 한 문화 간의 교류를 촉진함으로서 진정한 의미의 개방을 하자는 것이다. 고립되어 있는 문화는 결코 발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문화주권을 위협하는 무역협정에 반대’한다. 그 이유는 타 문화에 폐쇄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무역협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상품의 교역이, 교역의 미명하에 문화침략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다양성 협약의 추진과 채택은 더 이상 늦춰져서는 안 된다. 날로 확대되어가고 있는 BIT나 FTA, 그리고 WTO 무역협상 과정에서 자유무역의 논리에 의해 문화주권이 짓밟힌다면, 우리 나라의 경우 스크린쿼터 시스템과 방송쿼터제 등은 폐기될 것이며, 거대 자본과 마케팅 능력이 있는 미국 등 소수 국가들에 의해 문화독점은 심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행 우리 방송법 제71조(국내 방송프로그램의 편성)와 방송법 시행령 제50조(방송프로그램의 편성 등)에 의거하여 방송위원회에서는 ‘방송프로그램 등의 편성 비율 개정 고시’를 하고 있다. 이 고시에 따르면 지상파방송은 국내제작프로그램을 80% 이상 편성하도록 하고 있으며, 연간 전체 영화 방송시간도 25% 이상을 국내제작영화로 편성토록 하고 있다. 또한 국내제작 대중음악도 연간 전체 대중음악 방송시간의 60% 이상을 편성토록 하고 있다.

또한 수입한 외국의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중 ‘한 나라’에서 제작된 것이 매 분기 영화, 애니메이션, 대중음악 방송시간의 60%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지금 미국이 바라는 것은 단순히 스크린쿼터의 축소가 아니다.
스크린쿼터 축소 다음은 방송쿼터 축소 혹은 폐지이다. 스크린쿼터와 방송쿼터가 무너지면 우리의 영화관과 TV는 미국,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만든 작품으로 넘쳐날 것이고, 산업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우리의 문화콘텐츠 산업은 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제 국제사회가 문화다양성 협약 체결을 위해, 구체적이고 확실한 행동을 취해야 할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가 겪고 있는 문화정책 포기 압력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닌 모든 나라에 해당되는 공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보다도 더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어려운 국가들의 문화주권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전 세계의 고유문화는 말살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문화 협약은 반드시 채택되어야 하고 우리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또한 문화다양성 협약의 주요 내용은 결코 후퇴되어서는 안 된다. 한 번의 후퇴는 다음 후퇴를 가져올 것이고, 결국에는 문화산업 강국에 각 국의 모든 문화다양성을 뺏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의 참된 선진화 방향을 볼 때, 경제, 군사력으로는 현 상황에서 최강대국이 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문화는 다르다. 우리는 스크린쿼터를 지키고 있고,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과정에 우리나라의 NGO가 주도권을 가지고, 이끌어가고 있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윤리적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다면, 우리는 문화강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문화선진국의 이미지가 무너지지 않도록, 정부부터 최선을 다해 문화다양성 협약이 올바로 체결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최근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