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 면책 이유없다

최 재 천 국회의원

시민일보

| 2005-04-25 20:15:33

{ILINK:1} ‘작계 5029’에 대한 문제제기에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처의 반론이 있었다.

반론을 요약하자면 첫째, 한미 양국은 2003년 11월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작계5029’ 수립이 아닌 ‘개념계획 5029’의 수정에 합의한 바 있다. 둘째, 그런 차원에서 2004년부터 한미연합사의 실무협의가 있었고 2004년 여름부터 미측에서 개념계획을 작계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들고 나왔으며, NSC는 2004년 12월에야 합참으로부터 처음 보고를 받았기 때문에 NSC의 대응은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NSC의 말대로 작계화의 가능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NSC 스스로 무능함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04년 8월에 합참이 작계화의 계획을 미측으로부터 통보받고도 12월에야 NSC에 보고했다는 말을 믿기로 하자. 이 또한 기획·조정 기능을 생명으로 삼는 NSC의 무능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최소한 넉 달 이상 보고받지 못하고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이 또한 NSC가 보유한 조정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징표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NSC의 설립목적, 법과 규정이 정한 NSC의 기본임무, 대통령이 특별히 부여한 정보종합처리 및 분석임무에 비추어 볼 때 NSC의 반박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4월21일자 ‘문화일보’ 기사에 또 하나의 진실 혹은 또 하나의 이해 못 할 부분이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와 문화일보 기자와의 통화내용이다.

“지난 2003년 11월 합의문에는 ‘개념계획을 재작성한다’고만 돼 있는데, 미국은 그것을 ‘작전계획으로 간다’고 우리랑 다르게 해석했다. 주한미군은 작전계획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했고 우리는 개념계획으로만 생각한 차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필자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때 ‘재작성’을 의미한 단어는 ‘rewrite’였다. 이를 두고 한국은 ‘수정’으로 해석한 것이고 미국은 ‘전면 재작성’을 의미하는 ‘작계로 간다’고 해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상식적으로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외교 협상에 있어 법적·전략적 의미에서 여러 가지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단어의 경우, 협상시 이에 대한 의미를 명확히 하고, 그 해석을 한정지은 뒤 합의에 응하는 것은 외교의 ABC에 해당한다. 외교·안보분야의 최고 조정기능을 보유한 NSC가 이런 것조차 기획·조정하지 못했다는 게 과연 변명이 될 수 있을까?

SCM이나 한미미래동맹회의(FOTA)가 열리기 전 NSC에서 반드시 기획조정을 하고 회의가 끝난 직후에는 평가회의를 하는 것이 참여정부 NSC의 확립된 전통이다. 그렇다면 2003년 11월 NSC는 이런 협상에 대해서 어떤 지침을 내렸고 어떤 보고를 받았나?


사실 이 문제에 대한 진실공방은 간단한 일이다. 2003년 11월 전후부터 올 1월까지의 NSC 관련 회의록과 외교전문, 정부훈령, 대통령에 대한 보고 문서를 공개한다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다. 이것은 밀행주의·비밀주의 외교를 벗어던지고 공공외교(public diplomacy)를 지향하는 참여정부의 NSC 입장에서도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 것이다.

2003년 겨울 이후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 싼 주변 강국들의 각축이나 북핵문제의 악화,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이 급속도로 변화되고 있다는 현실을 NSC가 파악하고 있었다면, 작계화로의 가능성은 당연히 검토대상이었어야만 한다. 2003년 이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논의가 강화되고 있다는 상황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렇다.

언제라도 발생가능한 각각의 시나리오를 예정하고 거기에 대해서 위기관리를 할 수 있는 각종 매뉴얼이나 사전 대응방안을 만들어 보라는 것은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강조하는 부분이다.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는 게 반박이 될 수 있는 걸까? NSC 설립 초기라면 보고 시스템의 잘못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2년이 다 된 시점에서 이런 반박이 가능한 일일까?

2004년 2월에 열린 제7차 FOTA 회의 당시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에 대해 특별한 설명을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한반도 유사시 증원군의 한반도로의 배치(flow-in)를 위해서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NSC가 미국이 생각하는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개념 혹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한미 양국의 대응태세를 성찰하고 있었다면 이 때 이미 미국 측의 전략변화를 읽어냈어야 하지 않았을까? 전략적 유연성의 하위 개념 차원에서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공세적 군사계획은 작계화의 요구와도 당연히 연결될 것이다.

평시 작전권은 이미 한국군의 소유이다. 전시 작전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다. 급변사태는 전시가 아니다. 급변사태에 대해 한미연합사가 공동으로 작전계획을 마련한다는 것은 평시 작전권의 대부분을 회수해 가는 일이다. 그런데도 작계화 논의의 진행방향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고, 그것도 합참으로부터 한참 뒤에야 보고 받았다고 하니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국가안보와 직결된, 특히 ‘작계 5029’와 같이 주권 문제를 결정하는 중대한 사안은 내부 논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그 훈령을 받아 정책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합참의 보고가 없어서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은 면책의 이유가 될 수 없다.

법률 격언 중에 “법의 부지(不知)는 용서되지 아니한다”라는 말이 있다. ‘정책의 부지(不知)’ ‘전략의 부지(不知)’는 용서될 수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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